입력 : 2015.08.17 16:34

리뷰 | 화류비련극 홍도

예측불허의 장면을 뒤로하고 무대의 막이 내린다. 무대 위에는 계속 붉은 꽃잎이 날리고 있다. 꽃잎이 흩날리는 붉은 길을 홍도 남매는 손을 잡고 걸어간다. 진홍의 붉은빛이 전달하는 진한 느낌이 가슴속을 찡하게 울리고 있다.

극 공작소 마방진이 선을 보인 '홍도'가 지난해 공연에 이어 '마방진 10주년 기념작'으로 배우 예지원, 양영미가 더블캐스팅(홍도 역)이 되어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 다시 올려졌다. 현재 연극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고성웅 연출이 직접 각색 각본을 한, 1930년대의 신파극인 기생 홍도의 사랑 이야기로 그녀와 함께 울고 웃는 100분 시간이었다.

붉은 꽃잎이 날리고 있는 무대의 마지막 장면이 흰색의 기둥과 하얀 사각의 상자들을 이어놓은 것 같은 간결한 무대장치를 마음에서 지우게 한다. 기억에 남겨지는 것은 어느 봄날의 선운사 절 마당에 툭툭 떨어지던 동백을 연상시키며 무대를 붉게 물들여가던 진홍의 꽃잎들이다.

홍도
▲사진=문화아이콘 제공

인간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을 매우 간결하게 그러나 내면의 심층구조를 어떠한 무대장치나 복잡한 요소들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1930년대가 지니고 있었던 마음의 단면만을 잘라낸 것 같은 간결함으로 군더더기 없이 해부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기생이라는 이유로 시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여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연극 홍도의 이야기는 실제적인 처절함을 비켜서서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일종의 코믹 극을 보는 마음이 되도록 스토리 전개를 하고 있었다.

193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신파극은 개화기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영화로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극작가 임선규가 만들어낸 “홍도야 우지마라”가 2015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재조명하여 새롭게 탄생하였다.

붉은 꽃길을 걸어가는 홍도 남매의 모습에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아픔을 꽃으로 형상화 시키고 있었다. 원하지 않아도 자연은 순환을 되풀이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꽃은 피었다가 어느 순간 화려한 시간을 버리고 떠나간다. 우주의 큰 원리를 빌려서 생각하면 순간 머물다 가는 삶 속에서 무한한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는 풀리지 않은 인간의 관계를 마방진이 지니고 있는 도형처럼 인간이 풀어갈 수 없는 자연의 원리를 대입시키고 있었다.

사랑이라고 끊임없이 말을 하여도 헤어지자는 한마디에 이별하는 것이 사람이라 하였던 어느 연극 대사의 한 구절처럼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가장 쉽게 포기하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었다. 한 사람의 온전한 마음을 지닐 수 있을 때의 기쁨은 그 기쁨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사랑으로 가장 가깝고도 먼 사람으로 남겨지는 운명이 되는 두 사람의 인연이다. 그래서 인간의 관계는 마방진으로 나열하는 숫자의 배열처럼 알 수 없고 복잡하다.

사랑과 소유, 믿음과 배신은 인간이 이 세상에 오는 그 순간 지니고 태어나는 숙명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의지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난 갈등의 구조는 시대적인 불안함을 대신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시 1930년대의 홍도가 되어본다.

사랑의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다. 관계의 모습이 나타내는 형태에서 바라보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인연의 고리이다. 1930년에서 2015년의 간격으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신파극 홍도에서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모습은 변화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세상을 이어가는 원천적 사랑의 모습은 그대로 시간을 흐르면서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어느 운명의 시점에서라도 꼭 만나서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너와 나. 그 절절함으로 사랑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홍도와 애절하기만 한 홍도 남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정서가 지니고 있는 끈끈한 혈육의 정을 생각하였다. 잃어가고 있는 오래전의 기억을 불러와 우리 앞에 아름답고 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애처로운 여인 홍도는 2015년 마방진에 의하여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홍도의 사랑은 오로지 사랑이어서 애처롭다.

2015년의 여인이었다면 조금은 스스로의 사랑에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꽃잎이 되어 날리고 있다. 확인되지 않는 결과로 단정을 지어버리는 스스로를 향하는 존재감과 오만이 지니고 있는 오류 또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일상에서 확인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오류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홍도는 우리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숫자의 비밀을 지니고 있는 마방진처럼 그렇게 풀리지 않는 인간 원형의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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