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8.19 09:52

문화를 입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농업 시도하는 김기숙·최정인 씨알농원 대표

고창군 내동마을은 행정구역상 고창읍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다. 서른다섯 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은 홀로 작은 밭을 일구며 사는 노인들이나 가까운 고창읍내로 출퇴근하는 1인 가족들이다. 여느 시골마을과도 별다를 것 없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몇 년 전부터 이곳에 전세버스며 낯선 차량들이 수시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씨알농원을 방문하기 위해 찾아온 차량들이다.

씨알농원의 주인은 김기숙·최종인(55) 대표. 고향 친구사이인 이들은 지난 2011년 7월, ‘도저히 포기하기 힘든,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이 마을로 귀농하여 새로운 ‘농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름 하여 도화지농업이다. 두 사람은 내동마을 주변으로 펼쳐진 2만4천 평의 농원부지 중 약 9천 평에 이르는 기름진 땅위에 오디와 블루베리, 복분자 등을 재배하면서, 생산과 가공, 유통을 넘어 농업에 문화를 입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농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농부, 그것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수채화 같은 삶을 그리다, 도화지(圖畵地) 농업

김기숙 대표는 대학교수였다.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일이었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농촌으로 끌어 들인 것은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그가 생각한 새로운 삶은 농부가 되는 것이었다. 농사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펼치며 놀이 같은 일, 일과 어우러진 삶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1년 전, 마흔 네 살 때였다. 그때부터 귀농을 준비하기 위해 야생화를 배웠다. 지금의 농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6년 동안 공부한 야생화는 농사를 짓는데, 그리고 그가 그림 그리 듯 그의 농원과 마을을 꾸미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귀촌이 귀농으로

최종인 대표는 김기숙 대표를 이곳 고창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둘은 충북 음성에서 함께 나고 자란 고향 친구사이다. 최종인 대표는 잘 나가던 소방공무원이었다. 잘 나갔지만, 늘 마음 한구석엔 내 삶이 온전한 삶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딱 20년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10년을 근무 한 후, 10년 후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정말이지 할 것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고전을 공부하게 되었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에 심취했다.

8년 공부 끝에, 어느 날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삶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딱 20년을 채우고, 1년을 더 근무한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 20년 째 승진을 하면서 1년간 고민했다. 충북 단양 산골짜기에 2천 평짜리 예쁜 사과과수원을 얻었다. 그림 같은 2층짜리 집도 있었다. 그곳에서 쉬엄쉬엄 사과농사를 지어 생계도 유지하고, 계속 공부하며 살고 싶었다. 이를테면, 귀농이라기보다는 귀촌이었다.

“당연히 유기농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남들 제초제 뿌릴 때 2천 평 과수원을 예초기 가지고 풀을 베는데, 딱 1주일이 걸렸어요. 이러다 죽겠다 싶었죠. 그런데 처음 풀을 베었던 곳으로 가보니, 그 사이 또 무릎 높이만큼 자라있더군요. 그 전 과수원 주인한테 가서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죽어라 농사지어서 사과가 얼마나 나오느냐고요. 잘하면, 15킬로그램 박스로 6백 박스 정도 나온다더군요. 또 그 길로 공판장에 가봤어요. 한 상자에 2만원 하더군요. 그러니까, 여러 농자재비 뭐 이런 거랑 상관없이 제가 1년에 농사로 벌 수 있는 최대치의 돈이 딱 1천2백만원이었던 거죠.”


농사? 농업을 고민해야 한다  

수채화 같은 삶을 그리다, 도화지(圖畵地) 농업

본격적으로 농업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농업이 새로운 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어떤 희망을 보았다. 왜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도 명확해졌다. 농업을 단순히 ‘생산’의 측면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농사’를 벗어나 ‘농업’을 바라보자 그 앞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실제로 귀농에 실패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농사로 생계가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1차적으로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판로가 어렵죠.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생활 할 때 이미 내가 지을 농산물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농사는 어떻게든 지을 수 있습니다. 여기 고창군 만해도 여러 기관에서 최신 농사기술 전수해줄 준비를 다 하고 있어요. 하지만 농업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요. 그런데 농사준비만 하고, 농업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로 귀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당장에 평생을 농사만 짓던 프로 농부들하고 경쟁이 될까요?”


그림을 그리듯 농사를 짓다

수채화 같은 삶을 그리다, 도화지(圖畵地) 농업

이곳 고창읍 내동마을로 귀농한 김기숙·최종인 대표는 그간의 고민에 대한 결과로 도화지농업을 시도하고 있다. 도화지 농법은 1차적으로는 땅에 그림을 그리듯이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농한기 때면 인터넷에서 농원 위성지도를 다운 받아,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며 논다. 지도에 씨알농원의 경계선을 그리고, 그 안에 산책로며 쉼터를 어떻게 만들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꽃을 심을지를 그려나간다. 이미 농원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를 만들고 경관 좋은 곳에 쉼터를 지어 놓았다, 마을 곳곳마다 빈 땅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국화를 수십만 송이 심었다.

경관적인 부분은 도화지 농업에서 아주 기초적인 일부분에 속한다. 이들에게 농업은 단순한 ‘생산’이 아니다. 놀이고, 삶이고, 문화다. 농업이 놀이가 되고, 농업에 재능을 담아 문화를 입히고, 그래서 농업이 생계의 수단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되는 것이 그들이 꿈꾸는 도화지 농업이다. 그들은 도화지농업을, 농업을 통해 수채화 같은 삶을 꿈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꿈은 각자의 재능을 활용한 홈스테이와 문화체험, 고전강좌, 다도회, 음악회 등으로 이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입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귀농귀촌을 고민하는 도시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덕분에 9천 평의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들의 판로 걱정이 없어졌다. 씨알농원에 방문해서 유기농 농업과 농촌문화체험을 해본 사람들이 곧바로 소비자가 된다. 본인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홍보를 하거나 단체 주문도 곧잘 한다. 믿고 구입하는 것이다. 직접 와서 보고 듣고, 몸소 체험했으니 농산물에 대한 신용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강좌나 음악회 등이 있을 때는 한 집 한 집 방문하여 마을 주민들을 초청한다. 학생단체가 체험을 하러 올 때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든다. 이런 자리는 순식간에 마을 잔치가 되어버린다. 굳이 마을 주민들과의 화합을 고민하지 않는다. ‘마을주민으로서 열심히 살자’고 마음먹으니, 이 또한 저절로 해결되었다.


‘우리’의 꿈을 넘어, 지속가능한 도화지마을을 꿈꾸다

이들은 보다 큰 꿈을 꾸고 있다. 단순한 농장에 머물지 않고, 지속가능한 도화지마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최근에는 농촌 어메니티를 활용하여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의 농촌·문화체험과 휴식을 중심으로 고창의 여러 역사문화생태자원들을 연결하는 여행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불러들이고, 이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삶이 어우러지는 새롭고 지속가능한 그림을 더 크게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다.

수채화 같은 삶을 그리다, 도화지(圖畵地) 농업

“어떤 색깔로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힘든 농사일이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그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 문화적으로 그려내는 것이죠. 그랬을 때 진정한 농업의 경쟁력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농업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펼치며 그들이 꿈꿔왔던 일과 삶을 만들고자 택한 길. 도화지농업을 시도하고 있는 김기숙·최종인 대표는 오늘도 하얀 백지 위에 수많은 그림들을 그려나가며 가슴 설레는 삶을 살고 있다. 


자료제공·전라북도 귀농귀촌 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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