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마주할 아픔, 그래서 더 애틋한 이별

여성 감독 마르게리타(마르게리타 부이)는 정리해고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분투를 그린 영화 '우리는 여기에 있다'를 찍고 있다. 촬영 현장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온 괴짜 배우 배리(존 터투로)는 대사 몇 줄을 못 외워 시간을 잡아먹고 그녀를 괴롭힌다. 비밀이 많아진 사춘기 딸, 아직 정리되지 않은 전 남편, 애인과의 관계도 혼란스럽긴 매한가지다. 이 와중에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회복 불능 판정을 받는다.

20일 개봉하는 이탈리아 영화 '나의 어머니(Mia Madre)'는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은 겪게 되는 사건을 다룬다. 어머니의 상실 말이다. 마르게리타는 장기 휴가를 신청하고 병 시중을 드는 오빠(난니 모레티)와 달리 여전히 엄마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자신이 실망스럽다. 왜 하필 실직자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슬픈 영화가 아니라 희망에 대한 영화"라고 답한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 두 갈래로 흘러가는 '나의 어머니'에서 영화 촬영과 마르게리타의 사생활은 심장과 폐처럼 영향을 주고받으며 악화된다. 어머니의 병세는 더 위독해진다.

'아들의 방'으로 200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작품이다. '나의 어머니'는 몇 해 전 친모를 떠나 보낸 경험에서 출발했다. '아들의 방'처럼 가족의 죽음이라는 돌덩이를 소재로 삼았지만 영화가 어둡지만은 않다. 어머니라는 존재에 느끼는 애틋한 감정을 우아한 유머와 담담한 슬픔으로 담아냈다. 이런 이야기가 흔히 휩쓸리곤 하는 신파를 피하려고 꿈과 현실을 뒤섞으면서 마르게리타가 겪는 마음의 동요와 내면 풍경을 관조한다. 마르게리타의 딸이 오토바이를 타면서 바닥에 그리는 8자는 무한의 상징인 ∞로 읽힌다.

딸은 어머니에게 '소속'돼 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 세계를 잃는 것이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는 딸에게 "조금만 더 있다 가렴. 그게 최고의 치료야"라고 말한다. 아직 쓸모가 있다며 손녀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장면도 가족관계에 깊이를 더해준다. 마르게리타 부이의 섬세한 연기와 존 터투로의 유머러스한 모습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면서 균형 잡힌 앙상블을 이룬다. 올해 칸 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106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