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판 '여고괴담'… 목숨 건 야근이 시작되는데…

인턴 이미례(고아성)가 만원 지하철을 뚫고 사무실에 도착해 "출근이 정상 처리되었습니다"라는 기계음을 듣는 대목부터 불길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정상 퇴근한 김병국(배성우) 과장이 일가족을 망치로 살해하고 나서 사라졌다. 그가 사건 직후 회사로 들어온 CCTV 화면은 확보했지만 나간 화면은 어디에도 없다. 직원들은 형사 종훈(박성웅)에게 뭔가 숨기는 눈치다.

9월 3일 개봉하는 '오피스'(감독 홍원찬)는 회사라는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스릴러다. 올해 내내 부진했던 공포물이 여름 끝나는 마당에 늦게 도착한 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끔찍한 곳은 직장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취업의 문도 좁지만 들어가면 더 험악한 정글이 가로막고 있다. 김 부장(김의성)은 회의실에서 윽박지른다. "제사? 니 밥줄부터 챙겨. 추석 오기 전에 모가지 달아난다." 인턴 평가 1주일을 앞두고 영업2팀에 새로운 인턴이 배치되면서 정직원을 향한 이미례의 꿈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피스'는 불 꺼진 사무실이 얼마나 미로 같고 무서운지 잘 담아냈다. 영리한 공간 활용법이다. 책상 밑, 공간을 나누는 칸막이, 환풍 장치, 화장실, 계단참…. '추격자' '황해'의 각색자로 먼저 이름을 알린 홍 감독은 낯익은 회사 풍경을 소름 끼치는 곳으로 재발견했다. 그의 말마따나 '여고괴담의 회사 버전'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메신저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영화에서는 흔한 야근도 목숨 걸고 해야 한다. 나중엔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는 대사까지 무섭게 달려든다.

'괴물' '즐거운 인생' '설국열차'를 지나온 고아성(23)은 더 이상 우리가 기억하는 그 배우가 아니다.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를 질질 끌고 가는 이미례의 모습에서 '괴물'이 겹쳐진다. 그 영화에서는 괴물이 현서를 붙잡아 갔고 이번에는 정반대다. 우직하고 융통성 없던 김병국 과장, 일 저지르기 전까지 눈치 없이 죽도록 일만 했던 모습은 인턴 이미례와 닮았다. 회사원이 한계 상황을 벗어나면 어떻게 돌변하는지 서늘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무실 문명의 작동 원리는 무엇인가. 지난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밀리언셀러가 된 윤태호의 만화 '미생(未生)'을 떠올리게 한다. 야수들이 우글거리는 회사로 출근한다는 점에서 같고, 직장 생활이 심리적인 싸움이 아니라 생사를 오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이 누군가에게는 묵주가 될 수도 있다. 111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