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인 뇌샤텔 호수가 위치한 뇌샤텔 주(Canton of Neuchatel)의 주도 뇌샤텔. 아름다운 호수와 최고의 와인 산지로도 유명한 뇌샤텔은 스위스 시계 산업 최대 중심지를 품고 있는 스위스 시계 산업의 수도다.
뇌샤텔은 쥐라 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제네바, 루체른, 취리히, 바젤 등 스위스 유명 도시에서 1~2시간 걸리는 교통의 요지 중 한 곳이다. 뇌샤텔은 스위스 최대 와인 산지로, 기차역 주변에 길게 와이너리가 펼쳐져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곳 와인을 최고로 친다. 그래서 관광객보다 스위스인에게 더 잘 알려진 곳이 바로 뇌샤텔이다.
아름다운 호수와 성으로 둘러싸인 대학 도시
얼마 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18세기에 제작한 로봇 인형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전기나 건전지 등이 없던 시절 오직 기계의 힘만으로 작동하는 로봇 인형을 본 프랑스 사람들은 그 안에 사탄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에 시계 제작자 피에르 자케 드로는 기계를 열어 작동 원리를 공개하고서야 오해를 풀 수 있었다. 18세기 프랑스인을 놀라게 하고, 스페인과 중국 왕실까지도 매료시킨 피에르 자케 드로의 오토마타는 현재 스위스 뇌샤텔 예술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가 바로 뇌샤텔 출신의 워치메이커이기 때문이다.
제네바 또는 취리히 등 스위스의 주요 도시와 여행지 말고 뇌샤텔을 일부러 여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인 뇌샤텔 호수가 있고, 중세시대의 성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세계적인 관광지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시계 애호가들에게 뇌샤텔은 조금 더 특별한 곳이다. 자케 드로의 오토마타를 볼 수 있는 고장임과 동시에 라쇼드퐁과 르로클 등 시계의 본고장으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는 뇌샤텔을 ‘대학 도시’라고 부르는데 뇌샤텔 대학을 비롯해 유서 깊은 대학이 많다. 스위스 정부가 워치메이킹과 사후 관리 과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시계 학교 보스텝(Wostep)이 있는 곳도 뇌샤텔이다. 2년에 한 번씩 단 여섯 명의 학생만 선발하는 보스텝은 워치메이커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공부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유서 깊은 시계 공방이 자리한 곳
뇌샤텔에 본사를 둔 시계 브랜드도 많다. 자케드로는 뇌샤텔을 대표하는 시계 브랜드 중 하나다. 1721년 뇌샤텔의 작은 마을 라쇼드퐁에서 태어난 피에르 자케 드로는 바젤 대학에서 공부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첫 번째 워치 메이킹 공방을 열었다. 1758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페르디난트 6세에게 시계를 판매함으로써 명성을 얻은 그는 자동 인형 제작에 열정을 쏟았다. 이후 수학, 철학, 과학, 미술을 공부한 그의 아들 앙리 루이와 합작해 전 세계를 상대로 시계를 판매했다. 1775년에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작가, 화가, 피아니스트인 3개의 자동 인형을 선보였다.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오토마타다.
이탈리아 태생의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가 시계 비즈니스를 위해 선택한 곳도 뇌샤텔이다. 1975년 VIP 고객용 선물 시계로 선보인 불가리 로마 시계가 큰 인기를 얻자, 1977년 불가리 컬렉션을 론칭한 불가리는 1980년대 초반 뇌샤텔에 시계 라인의 창조와 생산을 위한 불가리 타임을 설립했다. 이후 뇌샤텔 인근에 위치한 시계 관련 시설을 순차적으로 인수, 인하우스 무브먼트부터 케이스, 브레이슬릿 등 모든 시계 관련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정통 워치 브랜드로 거듭났다.
이탤리언 디자인과 정통한 스위스 장인정신의 독특한 결합으로 더욱 인기 있는 오피치네 파네라이의 모든 시계들도 스위스 뇌샤텔에서 생산된다. 2002년 설립한 뇌샤텔 매뉴팩처에서 무브먼트, 케이스를 자체 개발, 설계, 제작하고 밀라노 본사에서는 제품 개발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컨트롤을 담당한다. 파네라이는 2005년 첫 번째 자사 무브먼트 P.2002를 론칭한 후 꾸준히 자사 무브먼트를 선보이고 있다.
시계 역사와 함께한 뇌샤텔 천문대 경연대회
시계 산업에서 뇌샤텔을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뇌샤텔 천문대다. 런던 큐 천문대, 제네바 천문대 그리고 뇌샤텔 천문대는 현대 시계의 역사와 각 시계 브랜드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 뇌샤텔 천문대는 지금의 크로노미터 인증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뇌샤텔 천문대는 지형적 조건이 좋지 못해 천문 관측이 어려운 곳임에도 정확한 관측과 수준 높은 연구를 진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메가, 지라드 페리고, 바쉐론 콘스탄틴 그리고 일본 브랜드 세이코 등 많은 브랜드가 뇌샤텔 천문대가 주최하는 경연대회에 참가했고, 이곳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시간 계측 정확도를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식 크로노미터 인증(COSC)이 없던 시절, 시계 브랜드들은 1866년부터 시작된 뇌샤텔 천문대 크로노미터 경연대회를 통해 정밀하게 제작한 시계들을 소개했다. 무브먼트의 정확도를 까다롭게 측정하는 것으로 유명한 뇌샤텔 천문대 경연대회의 우승은 곧 브랜드의 명성으로 이어졌고, 경연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본격 생산했다. 1966년 지라드 페리고는 천문대 관측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간의 정확도를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했고, 이를 기념해 ‘지라드 페리고 1966’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컬렉션은 지금까지 지라드 페리고를 대표하는 컬렉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호수의 도시 뇌샤텔에서 기차를 타고 20여 분 가면 스위스 시계의 메카, 라쇼드퐁이 자리해 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시계 산업으로 특화된 라쇼드퐁과 르로클의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