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적멸보궁 두 번째는 설악산 봉정암이다. 설악산 대청봉 아래 중청, 소청, 그 아래가 봉정암인데 무려 해발 1,244m 높은 곳에 있는 절이며 5대 적멸보궁 중 통도사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보궁들은 우연히도 모두 강원도에 있는데 그중 봉정암을 먼저 돌아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절은 지리산 법계사로 해발 1,450m에 있지만, 중산리에서 산 중턱의 환경교육원까지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나머지 구간을 1시간 반 남짓이면 오를 수 있는 데 비하여 봉정암은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까지 들어가서 그 이후 10Km가 넘는 거리를 6시간 이상 올라가야 하니 그야말로 고행이자 고통이며 웬만한 등산객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부처님 진신사리를 뵙고 참배하려는 불심으로 산을 오르는 불자들이 연중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필자가 답사 중에 만난 팔십이 넘으신 할머니는 벌써 세 번째 온다면서 손, 발을 다 동원한 네발 자세로 깔딱 고개를 오르면서도 연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었으니, 적멸보궁은 모든 불자가 참배해야 할 성지중에 성지이며 그 이유는 적멸보궁 참배가 곧 부처님 친견과 같은 의미라는 봉정암 측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봉정암은 내설악 백담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13년(644)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구해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웠으며 이후 원효대사와 고려 때 보조국사 등에 의하여 이어 온, 5대 적멸보궁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보궁이다. (문화재청 설명에는 외설악 신흥사의 말사로 되어있는데 이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자장율사가 절터를 찾으려는데 빛나는 봉황이 나타났으며 이를 계속 지켜보다가 쫓아가기를 며칠, 어느 높은 봉우리 바위 앞에서 봉황이 사라졌는데 그 바위가 부처님을 닮았던 것이니 그 바위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 후 오층석탑을 세웠으며 근처에 암자를 짓고 봉황이 부처님 이마로 사라진 것이라 하여 봉정암(鳳頂庵)이라 하였다고 한다. 특히 봉정암은 오층석탑에 부처님 뇌사리를 봉안하였기에 이를 일러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라고 하며, 살아생전에 꼭 한번은 참배해야 할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당일로 다녀오기는 어려워서 봉정암 측은 사전 예약으로 철야기도나 참배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는 있으나 찾는 사람들에 비하여 수용공간이 지나치게 부족하여 숙소사정은 여느 수용소 못지않게 협소하고 공양 시간에 제공되는 한 그릇 식사도 미역국에 짠지 몇 개 얹어서 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의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곳이 봉정암이다.
특히 봉정암에 오르는 수렴동 계곡에서 소청봉,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설악산을 산행하려는 많은 산악인이 즐겨 찾는 코스이기도 한데 그들이 찾아와도 (등산객은 잘 수 없다고 하면서도) 기꺼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봉정암에 전화를 걸어 예약하고 1박 2일로 다녀왔는데 그것도 주말이나 기도 수요가 많은 시기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아 등록이 어렵다고 하여 평일에 부러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백담사에서부터는 수렴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게 되는데 초반에는 강처럼 넓게 흐르는 계곡물가를 따라 평지 산책로를 걷듯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숲길은 나무 덱을 놓아 걷기 편하게 되어 있으며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 물은 군데군데 바위를 감돌며 크고 넓은 담(潭)과 소(沼)를 만들거나 크고 작은 낙차를 보이는 폭포수를 빚어내는 절경이 이어진다.
영시암에서 30분쯤 더 가니 수렴동 대피소, 이곳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올 수 있다. 대피소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데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1박 할 수도 있고, 누구나 이곳에서는 취사도 가능하고 쉬어가거나 간단한 용품, 먹거리 등을 구매할 수도 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올라갔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평탄하게 왔으나 이제부터는 서서히 오르막에다 바위를 줄 잡고 오르거나 험한 지형을 수시로 넘어야 한다. 그래도 주변 경치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 하류에서 보던 강폭 같은 흐름은 없어지고 굽이굽이 급하게 흘러내리다 폭포가 되어 검푸른 용소로 급전직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탄성을 자아내며 오르막 산행길의 피곤을 덜어주기도 한다. 특히 수시로 앞길을 가로막고 먹을 것을 내놓으라 협박(?)하는 이곳의 주인장, 다람쥐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귀엽다고 과자 등 먹거리를 던져주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쉽게 구하는 듯하다.
남은 길을 내달려 봉정암에 도착하니 좁은 지형에 이리저리 들어앉은 건물들이 복잡하여 한눈에 안 들어온다. 둘러볼 새 없이 사리탑을 찾으니 다시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다 끝난 줄 알았던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두 팔로 붙잡고 오른다.
깔딱 고개를 죽기 살기로 올라 드디어 봉정암이다 했지만 아직은 아니니라 하시는 듯 사리탑은 한참을 또 올라가야 한다. 자장율사가 따라온 봉황이 사라진 바위, 부처님 이마쯤 되는 곳에 뇌사리를 봉안하고 그 위에 세웠다는 5층 석탑은 높이 3.6m의 규모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마치 바위를 뚫고 솟아 나온듯한 모습으로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우뚝 서 있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높은 곳(해발 1,244m)에 있는 탑이다. 아! 반가움인지 놀라움인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만해 한용운의 백담사사적기(百潭寺寺蹟記·1923)에 수록된 봉정암 중수기(鳳頂庵重修記·1781)에 의하면 신라 시대 고승인 자장율사가 당에서 모셔 온 석가모니 사리 7과를 봉안했다고 하며, 이를 근거로 봉정암은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와 더불어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국내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꼽히는 것이며, 그중 설악산에 있는 가장 높은 보궁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5대 적멸보궁을 모두 순례하고 답사하게 되었으니 성취감에 안도감에 등산길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필자가 적멸보궁 소개는 두 번째로 하고 있지만, 실제 답사는 다섯 번째 마지막으로 이로써 5대 적멸보궁 답사를 완성하였다.)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麟蹄 鳳頂庵 五層石塔)- 보물 제1832호
통상 2층 기단에 3층이나 5층을 올리는 일반적인 석탑의 전형과 달리 봉정암 오층석탑은 자연석 위에 바로 세웠다. 기단이 없는 대신 자연석을 기단 모양으로 솟아오르게끔 조각하였고 주변 바닥에 16개의 연잎을 큼직하게 둘러 균형을 잡았다. 그 위에 세운 탑신이나 옥개석도 매우 단순하고 기본적이어서 석탑으로서의 예술성이 뛰어나 보이지는 않는다. 전하기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사리를 봉안하고 세웠다고 하나, 석탑의 모양으로는 고려 후기 때의 작품으로 보인다.
1층부터 3층까지 몸돌은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으며 4, 5층 몸돌에는 없다. 또한, 층별 옥개석은 일반적으로 날렵한 모습이 아니라 어쩐지 짧고 뭉툭한 느낌으로 지붕 끝만 살짝 들려진 모습인데 투박하면서도 친근해 보인다. 상륜부는 연꽃봉오리 형태의 보주를 하나 올려 단순하게 마감하였지만 어쩐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탑이라니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하기야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인데 석탑을 화려하게 한다면 부처님의 뜻이 아닐 것이니 참 적절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봉정암에서 조금 더 위쪽, 탁 트인 절벽 바위 위에 세워진 부처님 뇌 사리탑, 찾아와 참배하면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라는 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힘든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감수하며 찾아와 저마다의 소원과 바람을 빌고 또 빌었을까? 특히 대학입학시험 때는 엎드려 기도할 자리가 없다는 이곳, 우리가 찾아간 날은 평일이었는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쉴 새 없이 참배하고 경배하고 기도하고 향을 사르며 빌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부처님께서 저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시고 다 이뤄주시기 빌고 바랐다. 우리나라가 통일도 되고, 저마다 바라는 것 다 들어주셔서 아픈 사람, 우는 사람, 슬픈 사람 없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이렇게 하여 봉정암 순례와 답사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상행길이 아닌 오세암 쪽을 택했는데 상행길보다 훨씬 멀고 힘들고 어렵다. 내려오는 길임에도 무려 8시간이 걸렸다. 작은 산봉우리를 여섯 개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다 보니 지치고 다리아파서 오세암까지 4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봉정암에서 받아온 주먹밥은 내려오면서 이미 다 먹었고 오세암에서 다시 점심 공양을 받았다. 식사는 봉정암과 비슷하였다.
오세암(五歲庵)
스님이 다섯 살짜리 어린 조카를 놔두고 겨우살이 채비하러 대처로 나갔는데 그날 밤 폭설이 내렸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절에 남은 어린아이 생각에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여 눈은 계속 내리고 길은 막힌 채 다음 해 봄이 되어서야 돌아갈 수 있었는데 죽었을 아이가 법당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혼자 노는 듯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며칠 치 밥을 남겨두며 절을 떠날 때 조카에게 '저 아줌마(법당 내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하면서 놀고 있어'라고 하였는데 아이 말이 저 아줌마가 그동안 자기와 놀아주고 밥도 주었다니 관음께서 살리신 것이다. 그때부터 오세암으로 불렀다고 한다.
원래 오세암도 자장율사가 창건 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하였으며 1548년(명종 3)에는 보우 선사(普雨禪師)가 중건하였다. 1643년(인조 21)에는 설정(雪淨)대사가 중건했는데 설정 스님 이야기가 위 이야기다. 오세암은 김시습, 보우 선사, 한용운 등이 거쳐 간 곳으로 유명하며 작고 아담하며 수선(修禪)도량이자 기도 도량으로 알려졌다. 같은 제목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세를 타기도 하였다.
이렇게 오세암을 들려 백담사까지 내려오니 15:00 시, 봉정암 출발 후 8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그냥 올 수 없어서 백담사도 둘러보고 1박 2일 답사를 마치고 나니 많이 피곤했지만, 성취감과 만족도가 또 그만큼 크다. 불교 신자들은 살아생전 꼭 한번은 참배하라는 부처님 뇌사리보탑, 봉정암이다. 불자들에게는 꼭 참배해야 할 성지중의 성지가 5대 적멸보궁이다.
봉정암에 올라갔을 때가 8월이었는데 밤에는 추웠다. 한겨울은 또 어찌들 지내실지? 그 많은 참배객은 또 어찌 다 재우고 먹일 건지? 누가 그 수고에 애쓰고 고생하시는지? 참 감사한 마음과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흡족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