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세상 지랄이 풍년이로세~~”
소나기 한줄기 내리고 간 남산한옥마을의 국악당 지붕 너머로 말갛게 갠 하늘이 방금 공연을 마친 꼭두각시놀음의 장단을 맞추던 극단 ‘사니너머’의 북소리 징소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꼭두각시놀음을 재창작한 한국 유일의 인형극 중 인형들의 몸짓과 소리가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소나기 뿌린 여름 석양이 곱게 한옥 처마 아래로 붉은빛을 내리고 있다. ‘얼쑤~ 잘한다~~!!!’ 사니너머의 전통 타악기 소리가 다시 울려오는 것 같다. 무대 위엔 장구, 북, 징만 올려 져 있었다. 잠시 후 장구소리가 들려온다. 상반신만 빠끔히 내민 인형들의 어깨와 몸짓이 요란하다. 그 몸짓으로 그네들이 풀고 싶은 한의 정서가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우리네 삶의 정서가 녹아있는 그들의 몸짓에서 진한 인생의 여운이 전달된다. 자식이 죽어도 허허로운 너털웃음을 웃어야 하고 남편의 사랑을 빼앗겨도 돌아서지 못하여 이무기에게 송두리째 목숨을 빼앗겨 버려야 하는 여인네의 마음이 용강 이시미를 둘러싼 꼭두마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환호를 지를 만큼의 재주와 재담으로 풀어가고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인 연극으로 가면극, 탈춤 외에 인형극이 있으며, 현재까지 전승되어 내려오는 유일한 인형극으로 꼭두각시놀음이 있다. 꼭두각시라는 명칭은 여러 가지 탈을 쓴 인형을 의미하기도 하고, 중요한 등장인물을 뜻하기도 한다. 양반계층의 탐욕과 부패와 위선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은 가면극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꼭두각시놀음을 재창작한 전통 인형극 <돌아온 박 첨지>는 다양한 인형들의 몸짓과 재주로 악사들의 타악기 연주와 함께 독특한 연행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각각의 개성 있는 인형들의 몸짓과 모습을 통하여 옴니버스 형태로 다양한 이야기를 구성하여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남사당놀이의 6마당인 꼭두각시놀음, 풍물, 살판, 버나, 어름, 덧뵈기를 인형을 통하여 선보이고 있다. 줄거리 또한 해학과 풍자, 희극적 재담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배우들의 광대 적 놀이를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다. 독특한 대중성과 놀이 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 전통의 놀이문화를 현대적인 시선의 재현으로 신명 나는 한바탕의 장마당을 펼쳐간다.
2014년 서울연극협회 서울연극대상 연출 상을 받고 2015년 서울연극협회 서울연극대상 소품디자인 상을 <돌아온 박 첨지 시즌 2호>로 수상한 극단 사니너머는 연극예술의 새로운 창조와 현대예술을 접목하여 재창조하려는 분명한 목표와 의식으로 삶에 숨겨진 모든 것들을 우리의 정서를 통하여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고 있다. 인형들이 지니고 있는 몸짓과 우리 노랫가락에 담긴 인생의 애환들이 웃음을 던지면서 가슴에 찡한 여운을 남긴다.
한바탕 웃었는데 끝이 난 후 계단을 오르는 마음에 알 수 없는 여운이 남겨진다. 그렇구나! 인생이란 내가 지닌 모든 것들을 이시미가 먹어버리듯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어도 웃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구나! 새삼스럽게 마음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인형극을 통하여 확인하고 있었다.
승려에 대한 풍자와 비판, 양반의 위선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 남성의 여성에 대한 횡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야 하는 모든 인생의 과정들을 절묘하게 표현하여 함께 웃으면서 느껴가는 시간이었다. 감정의 절제가 아닌 인간 삶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 그네들이 수용해야 하는 삶의 아픔들을 웃음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평안감사의 재상거리에서 교묘한 풍자와 웃음 속에 남겨지는 진한 울림은 희미하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비밀스러운 문 하나를 열어 내게 숨겨진 것들을 보여줄 때 알게 되는 것처럼 무언가 머리를 한 대 딱! 하고 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남겨진다. 이시미라는 등장인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함께 하는 포기하지 못하는 욕망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의 장치로 이해하였다.
순간 국악당의 문 너머로 푸른 녹색의 한옥마을의 정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갈등하였던 시간의 문 하나를 넘어가는 마음이 되듯이 국악당에서의 마음이 현실의 나로 돌아오는 시간의 간격처럼 보였다.
우리의 전통이 지니고 있는 깊은 시선의 철학이었다. 이겨내지 않으면 겪어낼 수 없는 서민들이 지닌 삶의 애환들을 풍물로 풀어내고 노랫가락 속에 묻어두고 그렇게 우리의 전통은 여과지를 통하여 걸러지듯이 삶의 시간을 통하여 농축액으로 또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전통의 문화가 지니고 있는 정서들을 지켜가는 젊은 국악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감내하여야 하는 인내의 시간을 생각한다. 하나의 올바른 문화가 이루어지기까지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이다. 나와 우리를 지켜간다는 것은 소중한 무엇 하나를 포기하여야 가능한 것임을 이제야 깨달아 가고 있었다.
하늘을 향하여 고운 선을 이루고 있는 국악당 지붕처럼 우리 국악인들이 넓은 세상을 향하여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나가기를 기대하여 보는 시간, 그네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공연 기간 : 2015.07.23. ~ 2015.08.09
공연 장소 :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