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01 09:39

뙤약볕이 내리쬐는 옥상 텃밭에 앉아 포크질하고 있다. 장마가 사나흘 왔다 지나간 자리에 이름 모를 잡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사실 그동안 딴 붉은 고추를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햇살에 내놓으려고 잠깐 올라왔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돌아서려는 찰나 그놈의 잡풀이 내 시야에 딱 잡혔다. 봤는데 그냥 내려가기엔 뒤통수가 가렵다. 장갑도 끼지 않고 모자도 쓰고 올라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휙 돌아선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 저 보이는 놈만 뽑고 내려가자 했는데 웬걸, 여기도 저기도 잡풀 세상이다. 할 수 없이 땀 삐질삐질 흘리며 지금 플라스틱 일회용 포크로 포크질하고 있다.

잡풀 뽑는데 웬 포크질인가 하고 의아하겠지만 무슨 몇십 평 되는 밭도 아니고 일고여덟 평짜리 텃밭에선 이 포크가 단연 최고다. 손대고 풀을 뽑으면 흙이 손톱 사이에 끼여 난감하다. 하여 생각해낸 것이 이 포크질이다. 포크를 뒤집어서 쓱쓱 호미질 하듯 텃밭을 긁으면 신기하게 흙은 떨어지고 잡풀들은 포크에 걸려든다. 적당히 포크에 잡풀에 걸려들면 상자 텃밭 모서리에 대고 쓱 문지르며 한 번에 휙 떨어져 나간다. 이보다 편한 기구는 없다.

[시니어 에세이] 용도 변경

몇 년을 두고 뽑아도뽑아도 살겠다고 부득부득 한 다리 슬쩍슬쩍 걸치는 괭이밥이 어느 틈엔지 꽤 자라 꽃망울까지 맺혀있다. 대파 밑동에 착 달라붙어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나 보다. 슬쩍 짜증이 올라온다. ‘야, 야, 그만 좀 하거라. 내 싫다는데 넌 왜 자꾸 살림 차리냐!’ 한두 녀석만 산다면야 그까짓 상자 텃밭 한구석쯤 내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 괭이밥은 잠시만 한눈팔아도 대대손손 터를 잡아 버린다.

혹여나 여린 대파가 다칠까 봐 대파 사이로 조심조심 비집으며 포크를 살살 밀어 넣고 부~욱 긁어내는데 아뿔싸! 포크가 힘없이 뚝하고 반 동강이 나 버린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너에게 질소냐 싶어 손이 번개처럼 들어가 괭이밥 줄기를 낚아채 버린다. 괭이밥은 뽑아버렸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다. 가만히 부러진 일회용 플라스틱 포크를 들여다본다. 그런대로 좀 더 두고 쓸 만하다.

내가 처음 포크를 만난 것은 중학교 가정시간이었다. 난 그 가정 시간이 참 싫었다. 발음도 잘되지 않는 영양소 이름들도 외우기 싫었고 서양식 상차림에 나오는 나이프와 포크 자리도 헷갈리기만 했다. 오른손에 나이프를 왼손에 포크를 들어보면 어색하기만 했다. 그 어색함이 틀린 것 같아 다시 오른손에 포크를 왼손에 나이프를 들어보지만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요즘이야 식사할 때 포크를 쓰는 일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포크는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을 당시 '뭐 이런 걸로 음식을 먹어'라며 경멸과 조롱을 받던 천덕꾸러기였다고 한다. 英 음식 칼럼니스트 비 윌슨이 쓴 '포크를 생각하다'를 보면 숟가락의 조상은 조개껍데기이고 젓가락의 조상은 작대기란다.

그렇다면 포크의 조상은 뭘까? 나이프로 썰어서 찔러서 먹어야 하니까 포크의 조상은 꼬챙이라고 한다. 역사에 첫 포크가 삼지창 모양을 하고 등장한 11세기였지만 별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을 당시 '뭐 이런 걸로 음식을 먹어' ‘하느님이 주신 성스러운 손을 두고’라며 경멸과 조롱받던 천덕꾸러기였다. 그 천덕꾸러기가 제대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때부터니 우리나라 역사로 보면 숙종 때부터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의 식문화가 서양보다 훨씬 더 발달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괜히 흐뭇하다.

아직 어린 내 손자 숟가락을 보면 포크와 숟가락이 합쳐져 있다. 이것을 이름하여 스포크(spork)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발상이다. 그러니 내가 포크를 들고 상자 텃밭의 풀을 뽑은들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조개껍데기가 숟가락이 되고 삼지창이 된 포크가 식탁에 올랐으니 식탁에 오른 포크를 텃밭으로 보낸들 어떠랴.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변하면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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