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02 17:20

[시니어 에세이] 채우고 싶은 것들

가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창밖 화분대에 걸쳐놓은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잠자리를 만날 때. 어느 날 연못가에 피어난 보랏빛 창포꽃을 만나는 날이나 화분에 심어놓은 상사화가 장맛비를 뚫고 연분홍빛 꽃대를 밀어 올릴 때.

여백이 있는 사실주의 그림이 좋다.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 나 에스파냐 출신의 프랑스 화가 ‘피카소’의 그림은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다. 옆으로 봐도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모르니 내 수준이 낮아서라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미술사적으로 말할 때 인간과 외계 현상 사이가 비교적 행복한 친화 관계일 때는 사실주의가, 변화와 불안이 많은 시기엔 추상주의가 유행한다고 한다. 하니 나는 아마도 지금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선 초기의 여류 서화가인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좋다. 그녀의 그림들은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 즉 사실주의라 좋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이 그린 그림 중에서도 ‘초충도(草蟲圖)’를 좋아한다. 쉬운 말로 바꾸면 벌레 그림이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도 잘 볼 줄도 모른다. 그러나 이 ‘초충도’를 보고 있자면 벌레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잡풀이라 불리는 풀포기들이 그림 속에서 향기롭고 살아나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 자연스럽다. 그래서 ‘신사임당’이 좋다.

내가 ‘신사임당(申師任堂)’을 좋아하는 건 내 고향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현명한 한 남자의 아내였기 때문도 아니다. 조선 시대라면 천편일률적으로 매·난·국·죽의 사군자만 치던 시기였다. 요즘 말로하면 창의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매·난·국·죽의 사군자를 잘 치면 선비로서의 대접을 후하게 받던 시절이다. 그 시절에 스스로 그림을 익히고 자기 세계를 열어나간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그녀는 초충도(草蟲圖)에서 다른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던 하찮은 풀꽃들에, 풀벌레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초충도(草蟲圖)’는 사실 그림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전통회화 관점에서 보면 중심에 서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화(民畵)다. 우리가 들길의 풀꽃과 길섶의 벌레를 무심코 지나치듯 지금이나 그때나 풀꽃과 벌레들은 화가들의 눈길을 좀처럼 받기 힘든 소재다.

그 시절의 선비가 아닌 화공들도 오이 넝쿨이나 모란이나 연꽃 같은 화려한 꽃들을 선호했다. 벌레들이 아닌 호랑이나 용처럼 위엄 있는 것들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신사임당(申師任堂)’은 달랐다. 자칫 스쳐 가기 쉬운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고 평범한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 펼쳐 보였다.

엄격히 말한다면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초충도(草蟲圖)’에서 그림의 여백을 더 좋아한다. 여백이란 뜻을 보면 ‘전체에서 그림이나 글씨 따위의 내용이 없이 비어 있는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여백은 버린 공간이 아니다. 그릴 게 없어 비워 둔 공간이 아니다. 선비들이 사군자를 그릴 때도 여백을 중요시했다. 왜일까? 여백이란 여유요, 보이지 않은 채움이기 때문이다. 무한하게 비워내고 채워가는 공간이다.

이제는 여백(餘白)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좀 비우며 살고 싶다. 차고 넘치는 곳을 비우고 정말로 알찬 것들로 채우고 싶다. 바지랑대에 내려 잠시 쉬어가는 잠자리나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그려 넣고 싶다. 텅 빈 하늘에 산자락으로 넘어가는 노을이나 길가에 피어나는 구절초의 연보라빛 향기를 그려 넣고 싶다. 숲에서 들리는 이름 모를 새들이 부르는 노래를 여백에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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