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父情의 비극적인 그 이름, 思悼

영조(송강호)가 세자(유아인) 앞에 칼을 던진다. "자결하라.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아비를 죽이려는 자식을 처분하는 것이야." 세자에게는 궁궐 후원에 토굴 파고 관을 짜며 상복 입고 임금이 죽으라고 굿판을 벌였다는 죄가 들씌워져 있다. 왕은 급기야 "뒤주를 가져와 세자를 집어넣어라" 명한다. 뒤주 안은 비좁고 어둡다. 아버지는 뚜껑을 덮고 직접 못을 친다. "타닥 타닥 타닥…."

16일 개봉하는 '사도'(감독 이준익)는 가슴을 쿵 치는 망치질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이야기를 불러낸다. 장식이라곤 없다. 요즘 사극들이 재해석이나 미술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사건(사실) 자체의 힘으로 경쟁했다. 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 8일간의 기록으로 이 비극을 압축한 이준익 감독은 현재와 과거가 틈입하는 구성으로 영조와 사도, 정조 등 3대에 걸친 인과관계를 살폈다.

영조는 형을 독살했다는 의혹과 근본이 안 좋은 후궁 소생이라는 출신 때문에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다. 그래서 아들이 더 완벽하길 바랐다. 총명했던 세자가 공부가 아닌 예술과 무예를 좋아하고 자유분방하게 생활하자 왕은 낭패감에 휩싸인다. 부자지간에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 두려움과 실망감으로 영조는 점점 가혹해지고 세자는 더 엇나간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자(父子)관계가 헝클어지는 건 현대사회에서도 흔한 일이다.

돌직구를 던지는 이 비극은 인간이 어떻게 파멸하는지 간접경험 하게 하면서 연민과 공포를 자아낸다. 대리청정, 양위파동을 거쳐 1762년 임오화변까지 아버지와 아들은 정면충돌하며 둘 다 상처투성이가 된다. 이 사극은 제목이 그렇듯 사도세자에서 '세자'라는 직책을 걷어냈다. 과거의 그를 현대로 소환해 철저히 한 개인으로 접근했다. 카메라는 뒤주 밖 아버지와 뒤주 속 아들을 번갈아 비추면서 심리적인 공간을 확장시켰다.

'베테랑'에서 재벌 3세 조태오로 관객을 놀라게 한 배우 유아인은 '사도'에서 더 고난도의 배역을 견뎌냈다. 감정을 뭉쳐서 던지는 솜씨와 폭발력, 에너지는 송강호 못지않다. 관객은 그에게 몰입해 이 비극을 건너간다. 송강호도 40대부터 80대까지 영조의 40여 년 세월을 흔들림 없이 담아내며 유아인의 광기에 계속 군불을 지폈다.

영화는 수수하고 느리고 무겁다. 양념에 길든 사극 관객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정조에게 어떤 가르침과 복(福)을 내리는지, 슬픔을 품위 있게 보여준다. 자극에 기울어진 관객의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사극일 수도 있다.

영조는 세자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린다.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세자라 하라." 이 영화는 250년 전 그 죽음을 검시(檢屍)하듯 들추면서 당신의 아들 또는 아버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125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