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리스크 피하라… 펀드들 주식 비중 줄인다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 둔화라는 G2(미국·중국) 리스크가 국내 금융시장을 짓누르는 가운데, 큰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들은 주식보다 현금을 늘려 '수비(守備)'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94.91%를 기록했다. 지난 7월만 해도 주식 편입 비중이 96%를 넘어섰는데 이후 현금·채권 같은 안전 자산 비중을 높이면서 주식 비중이 낮아진 것이다. 국내 3대 운용사(미래·삼성·KB) 모두 최근 한 달간 주식 비중을 일제히 축소했다.

대형 운용사 매니저 A씨는 "매니저들은 환매에 대비해서 미리 현금 비중을 늘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고 있어 환매를 걱정하는 국면은 아니다"면서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주식을 사지 않는 '좀비 모드'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는 코스피지수가 중국발 쇼크로 1820선까지 하락한 지난달에만 1조6000억원, 이달에도 벌써 65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다수 운용사, 주식 팔고 현금 비중 확대

지난 7월 2080선을 넘었던 코스피지수는 9월 1880선까지 하락하면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통상 자산운용사들은 상승장이 예상되면 주식 비중을 늘리고 반대의 경우엔 줄여가는 전략을 취한다.

연초 이후 꾸준히 주식 비중을 늘려왔던 운용사들은 코스피가 정점을 찍은 7월부터 주식 비중을 줄이기 시작했다. 회사별로 전략은 다르지만, 대다수 운용사는 중국 경기 관련주나 혹은 제약·바이오 등의 성장주 비중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준 삼성자산운용 상무(CIO)는 "글로벌 증시를 괴롭히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발 경기 둔화 우려가 완전히 가셨다고 볼 수가 없고 이런 점을 고려해 다소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향후 코스피가 1850에서 2000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펀드매니저들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에 따르면, 지난 7월 글로벌 주요 기관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5%로 2008년 리먼 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46개 운용사 중에 현금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소형 운용사인 유경PSG자산운용이었다. 지난 5월만 해도 주식 비중이 90%에 달했지만 현재는 62.8%에 불과하다. 선제적인 대응을 한 덕분에 1개월 수익률(-2.28%)은 운용사 중 1위였다. 해당 운용사의 강대권 주식운용본부장(CIO)은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리스크 관리를 우선해야 한다고 보고 주식 비중을 낮추고 채권도 단기채 위주로 보유 중"이라며 "거시경제 상황과 연관이 적은 종목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리스크를 낮추는 투자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 비중을 82% 선까지 줄인 스팍스운용의 김병기 상무도 "G2 리스크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고 보고, 주식 비중을 낮춘 상태에서 시장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운용사, "공포를 사라" 공격 투자

라자드코리아운용·메리츠운용 등 일부 운용사는 공포 속에서 적극적으로 주식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연초 이후 수익률이 37%대로 업계 1위인 라자드운용은 최근 주식 비중을 업계 최고인 99.7%까지 끌어올렸다. 동일권 라자드운용 대표는 최근 펴낸 운용보고서에서 "3분기(7~9월) 주식시장은 국내외 환경 모두 우호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수한 사업구조를 보유하고 실적을 내는 기업을 식별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에 집중한다면 결국 양호한 운용 성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초 이후 수익률 2위(27.9%)인 메리츠운용 역시 최근 한 달간 주식 비중을 93.7%에서 96.4%로 높였다. 존리 메리츠운용 대표는 "지금 주식이 많이 싸졌기 때문에 주식을 더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들 변덕 때문에 주가가 추가 하락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장기 투자자에겐 좋은 기회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어느 쪽의 선택이 맞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