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제법 날씨가 선선하다. 구청에서 날라 온 우편물을 보고 있다. '우대용 교통카드' 발급 안내장과 '노인 폐렴구균' 무료 접종 안내서이다. 남들이 "지공~지공~" 하더니 이제 나도 지공(지하철 공짜)이 됐다. 그냥 앉아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요즘 나이를 자꾸 의식하게 되는데 이 우편물들이 내게 도장을 찍는 거 같은 느낌이다. '넌 이제 노인이야' 그래 내 나이를 인정하자. 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젊었을 땐 직장생활 하면서 돈도 벌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재미에,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재미에, 나를 가꾸는 재미에, 맛있는 음식 먹는 재미에 무엇이든지 재미있었는데 점점 재미있는 일이 줄어든다. 내가 억지로 나를 일으키지 않으면 일상이 그저 그런 날이 된다.
지하철 공짜카드를 받으면 뭐를 할까? 온양으로 온천 하러 갈까? 춘천으로 닭갈비 먹고 바람 쐬러 갈까? 모임에 나와서 "나 이제 지공이 되었어." 하며 씁쓸해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난 그때 그 친구가 나이가 많아서 나보다는 노인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 차림이 그랬다.
요즘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꼭 가보는 곳이 있다. 엄마 옷 판매 사이트다. 여태는 전에 입던 직장생활을 하며 입던 옷들을 아까워서 활용해서 입었는데 이제는 옷부터 서서히 바꿔야겠다. 자신도 모르게 체형이 바뀌어서 그 옷들을 입으면 불편하다. 이제 나한테 걸맞은 편한 옷으로 바꿔야겠다.
외모에 뭐 그리 신경 쓰느냐고 할테지만 내가 노인이 되어보니 그게 아니다. 외모는 꼭 신경 써야 한다. 외모를 가꿈으로써 자신이 자신을 바라볼 때 자신감까지는 아니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단정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다. 머리도 아직은 멋진 백발보다는 더 멋진 염색 머리로 가꾸고 싶다.
절약하는 습관도 좋지만 이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버려야겠다. 여행을 가면 가방 하나에 내가 꼭 필요한 것만 넣어 가지고 간다. 이번 여행에도 그랬다. 가방 하나면 이렇게 살 수 있는데 집에 가면 짐 정리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나는 필요 없지만, 아까워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한쪽에 골라내니 커다란 가방으로 세 개나 된다.
이 물건들이 내겐 필요 없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도록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것이다. 자식들이 살아내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며 자꾸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요즈음, 지하철 공짜 카드를 받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모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