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15 13:25

청바지에 통기타를 걸치고 내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던 남자가 있었다. 왜 그렇게 멋져 보였는지, 나도 멋지게 보이고 싶어 기타를 배우겠다고 학원에 다닌 적도 있고, 가사를 직접 써 보겠다고 뭔가를 끄적이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오랜 옛날이야기다. 그래서 통기타 하면 아련한 추억과 함께 젊은 날이 떠오른다.

남이섬에서 통기타 50년 기념비 제막식과 축하공연이 있다기에 찾아가 봤다. 청평호수의 물살을 가로지르며 요트에 매달려 시원하게 질주하는 사람들, 밧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아찔한 공중에서 출렁거리며 번지 점프하는 사람들,길게 뻗어있는 메타세콰이어 숲길사이로 희잡을 두른 미녀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에서 '겨울연가' 로 인해 남이섬이 정말 국제적인 명소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박물관 앞에 마련된 제막식에는 제주도에서 가져왔다는 까만색 현무암에 기타가 그려져 있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이 비석은 통기타 50년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중음악의 역사를 열어나가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노래 박물관에는 무교동 음악 감상실 쎄시봉, 청개구리의집, 쉘부르 등 청년문화와 통기타 음악의 전성시대를 이끌어온 주역들의 인터뷰 영상들을 볼 수 있는 영상관과, 싱어송라이터들의 LP판 앨범들, 익숙하고 다정한 포크송가수들의 얼굴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어 옛날로 돌아 온 듯 착각하며 둘러보았다.

가장 기대했던 축하 공연시간. 허옇게 기른 수염에 통기타를 메고 가수 김도향이 등장했다.

“이 곡을 만든지 꼭 50년 됐습니다”

통기타 음악 50년 기념비 제막식
▲해바라기. /나이섬 사이트 캡쳐

눈을 지그시 감고 “벽오동 심은 뜻은 보옹황을 보오잤더니…”괜히 눈물이 핑 돈다. 이유도 없이 사연도 없으면서…. 젊은 시절 그렇게도 좋아했던 해바라기,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기타를 들고 앉아 반주를 하는데 벌써 눈물이 맺힌다.

“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관중들 모두 나와 같은지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다. 몸으로 박자를 맞추고 아련한 시선으로 옆 좌석의 여인이 말한다. “너무 너무 좋아 했어요. 해바라기 많이 늙었네요. 노래 들으니 참 좋아요”

50년이 흘렀으니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있는데 왜 유독 무대 위의 그들만 늙어 있는 것 같을까?

다함께 노래 부르기에선 대학시절 캠핑을 온 듯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자아 떠어나자 동해 바아다로오오”

꽉 메운 관중들의 합창이 경쾌하다. 노래하는 가수들이나 듣는 관중들 모두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한 것 같다. 꿈과 낭만, 희망과 자유를 노래했던 통기타 음악은 당시 청년 문화의 꽃으로 당시 청년들에겐 깊은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다. 유행한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서 대중음악으로 사랑을 받고있는데 만약 우리세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아름다운 남이섬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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