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위에 오르다, 8가지 '人生 코스요리'

결혼식은 주례사나 축가, 음식이 아니라 장소 때문에 특별해질 수 있다. 남들이 결혼을 끝장내는 가정법원에서 혼례를 올리는 신랑 신부도 있다. 발랄한 액땜이다. 하객에게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도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 못지않게 어디에 어떻게 담기느냐가 궁금하다. 10일 개봉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감독 로저 알러스)는 미국에서 약 1000만 부 팔렸다는 칼릴 지브란의 책 '예언자'를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아트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골랐다. 결혼·사랑·일·아이들·음식·선악·죽음·자유 등 주제별로 독립된 영상들을 이어 붙이는 식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잠언이란 훈계하는 말장난 같아서 영화로 읊으면 거부감을 부를 것이라는 편견을 훌쩍 뛰어넘는다.

불온한 시를 썼다는 죄목으로 구금된 시인 무스타파의 집에서 일하는 카밀라는 아빠를 잃고 말을 잃어버린 딸 알미트라 때문에 근심한다. 친구라곤 갈매기밖에 없는 이 말썽꾸러기 소녀는 무스타파와 가까워진다. 알미트라는 그가 풀려나 고향으로 떠나는 날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진리와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하며 마음을 열어간다.

지붕 위에 올라간 알미트라가 바닷바람에 부풀어오른 돛처럼 가슴을 활짝 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나이를 초월하는 성장 드라마다. 관객 앞에는 8가지 코스 요리가 펼쳐진다. "서로 사랑하되 사랑이 족쇄가 돼서는 안 된다"(결혼) "강과 바다가 하나이듯이 삶과 죽음은 하나다"(죽음)….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이 잠언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편 영상 8편을 품고 있다. 가령 '아이들'은 이렇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더니 몸이 활처럼 휘어지고 화살이 발사된다. 그 화살은 새의 모습으로 바뀌어 날아간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나왔을 뿐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패턴과 상상력이 다채롭다.

'라이온 킹'의 로저 알러스 감독은 원작에서 8가지 주제를 뽑아 세계적인 애니메이터들에게 맡겼고 그들은 저마다 4분 길이의 영상을 만드느라 1년을 쏟아부었다. 예술 영상 8점을 재생해 보여주는 갤러리에 들어온 기분이다. 성찰적이지만 오락성은 부족해 미취학 아동이 이해하기는 버겁다.

"이야기는 나의 날개고 넌 나의 메신저"라고 무스타파는 알미트라에게 말한다. 이 영화야말로 원작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배우 리엄 니슨이 무스타파, 셀마 헤이엑이 카밀라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85분,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