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18 09:57

그야말로 별이 쏟아질 듯 밤하늘에 가득했다. 도심을 멀리 벗어난 최근 여행에서였다. 육안으로 5,000개는 볼 수 있다는 별이 도시에서는 기껏해야 100개가 보인다니까 그럴 만도 했다. 실제 별의 개수는 7 다음에 0이 22개 붙는 숫자로, 7조 곱하기 1백억 개라고 과학자들은 가늠한다. 2050년의 전망대로 세계인구가 1백억 명에 달한다고 하더라도 별의 개수는 사람보다 7조 배나 많은 셈이다. 지구의 모래알 숫자보다는 7배 많다니, 알고 보면 별은커녕 모래알에도 댈 수 없이 그 수가 적은 게 사람이다.

[시니어 에세이] 안의 빛, 밖의 빛

그럼에도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란 노래를 부르던 청춘을 거쳐 와서일까. 하늘에 별이 있다면 그만큼 땅에는 사람이 있고, 모든 사람은 ‘별’이란 소싯적부터의 생각을 고치고 싶지는 않다.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별처럼 앞으로 세세대대 이어질 생명까지 포함한다 치면 그만이다. 별이 반짝이듯 생명이 빛나기에 사람은 저마다 하나의 별이요, 스타로 존귀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환하게 밝든지 약하게 가물거리든지 생명의 빛이 있는 동안은 ‘나도 스타’, ‘너도 스타’이기를 바라서다. 


눈동자 속의 별빛

올여름 산골에서, 바닷가에서 쏟아지는 별빛 아래 새삼 든 바람이다. 도시에서는 별빛을 보려면 인공의 빛을 꺼야 한다. 밤의 조명이 날로 화려해지면서 인공 빛은 이미 또 하나의 공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인공 빛과 별빛을 구분하지 못해 매미가 밤에도 울어대고, 새가 도시를 헤매는가 하면, 단풍은 가을에도 붉어질 줄을 모른다. 사람들 또한 인공 빛으로 인해 시력이 저하되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밤새 환한 조명이 주로 밤에 분비되는 수면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억제해 숙면을 방해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낭비되는 빛을 내는데 미국에서만 연간 10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런 빛 공해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지구촌 불 끄기’ 캠페인이 벌어지고도 있다. 2007년부터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한 시간 동안의 불 끄기에 전 세계가 동참하자는 행사다. 하지만 한 해 한 시간이 아니라, 매일 과도한 인공 빛을 줄이려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다. 그래야 좀 더 별빛을, 무엇보다 사람의 빛을 제대로 볼 수 있을 터이다. 삐까번쩍한 겉의 인공 빛이 아닌, 눈동자에서부터 나오는 별빛 말이다.


‘광내기’ 제품들 천지

그런데 그 빛이 나이 들어가며 점차 사라지기에 십상이다. 눈빛이 어두워지고, 그로 인해 얼굴빛이 칙칙해진다. 세수하지 않아도, 티셔츠 한 장만 걸쳐도 빛났던 얼굴이 더는 아니게 된다. 스팀타월을 얼굴에 올리고, 쌀뜨물로 세안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챙겨 바르면 얼굴빛을 환하게 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폐 기능이 좋아져야 빛이 돌아온다며 토마토와 브로콜리, 무, 고등어처럼 폐 기능을 강화해주는 음식을 먹으라는 얘기도 들린다. 빛내는 ‘종결자’는 단연 화장품이다. 갖가지 ‘광내기’ 제품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일찌감치 아이섀도나 립스틱은 물론이고, 파운데이션이며 파우더에도 ‘펄’이란 반짝이가 들어갔다. 요즘엔 스킨이며 로션, 크림 같은 기초화장품들도 바르면 빛이 나는 게 많다. 이른바 ‘물광’이다. 별빛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빛나게 될 것인 양, 광고는 이런 화장품의 사용을 부추겨댄다. 옷과 구두, 장신구도 마찬가지여서 반짝이는 스팽글이 박히지 않은 걸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차림새가 점점 번쩍번쩍해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초라하게 여겨진다. 그 잣대를 남의 차림에까지 들이대며 간섭하는 또 다른 빛 공해도 종종 나타난다.


별 볼 일 없는 세상에서 별 보기

어떻게든 빛나고 싶다는데 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먹고 바르고 걸치는 것에서 근본 처방을 찾을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노화 같은 겉의 문제이기에 앞서 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치 못하면 얼굴에서 빛이 사라지게 된다. 근심이라는 스트레스가 빛을 앗아가는 것이다. 눈이 가장 먼저 빛을 잃는다. 마음고생 없이 밝게 사는 이들은 눈빛이 밝고, 따라서 나이에 상관없이 얼굴이 젊어 뵌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이 세상에서 별을 보고,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려면 내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안에 빛이 있으면 밖은 스스로 빛이 나는 법이다.’ 슈바이처 박사의 명언을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마침 올해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빛의 해’다. 아랍에서 빛 연구를 꽃피운 이슬람 과학자 이븐 알하이삼이 ‘광학의 서(書)’를 펴낸 지 딱 1,000년이 되는 해를 기리기 위해서다. 국가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빛을 되찾은 광복 70년이 되는 해다. 이제 나의 외부는 점차 낡아질지라도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을 계속해나가노라면 그 빛들로 국가도, 세계도 더 밝아지지 않을까.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