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진짜카메라', 날 속이지 마세요"

지난 16일 이경규(55)는 서울 상암동의 녹화장에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가 새로 단독 MC를 맡은 TV조선 '이경규의 진짜카메라'를 위해 직접 낸 아이디어였다. "이 프로그램은 신기한 사연을 가진 게스트와 저, 이렇게 단둘이서 스튜디오에 나와 얘기하는 콘셉트잖아요. 시청자가 보면 화면이 썰렁해요. 그러니 강아지라도 데리고 나와야 눈길을 끌지." 그러곤 피식 웃더니 덧붙인다. "근데 지난번 녹화 때는 (강아지가) 너무 짖어서 10분 만에 치워버렸어."

녹화장에서 만난 이경규는 "단독 MC라서 도망갈 곳이 없으니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제가 보통 새 프로그램을 하면 첫 두 달은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PD들을 달달 볶아요. 이번엔 오죽하겠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또 히죽 웃는다. "근데, 프로그램 망할 것 같으면 그때부턴 PD 말 듣습니다. 내 책임 되면 안 되니까."

15일 '진짜카메라' 첫 회가 방송될 때 프로그램 제목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경규의 이름값이다. 시청률도 1.2%(닐슨 코리아)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한창 담당 PD를 들들 볶을 때란 얘기다. 그는 "첫 방송을 보니 뭘 보완해야 할지 보이더라"고 말하더니 옆에 있던 담당 PD를 보며 씩 웃었다.

'진짜카메라'는 세상에 온갖 진기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얘기를 나누며 그 사연이 정말인지 이경규가 직접 검증해보는 TV 쇼다. 그를 국민 MC 반열에 올려놓은 '몰래카메라'의 이미지를 차용한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보통 제목이 안 좋은 프로그램은 빨리 망해요. 그런데 진짜카메라는 제목이 좋잖아요. 바로 하겠다고 했죠."

첫 회엔 인도식 건강법을 실천한다는 사람이 나왔다. 이경규는 게스트가 말한 고무줄을 이용한 비강(鼻腔) 청소법을 기어이 직접 시연해보였다. 30㎝ 길이의 고무줄을 몇 차례 콧구멍에 집어넣더니 한마디. "이거 술 마시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의학 전문가까지 동원해 게스트의 진실성을 검증하지만 최종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긴다. 이경규는 "내가 판단을 내리기보다 시청자들에게 결론을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진지함으로 일관하는 걸 못 견딘다. 체질적으로 삐딱이다. 스스로도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고 말한다. 남들과 반대로 보고, 꼭 한마디씩 농담을 붙여야 직성이 풀린다. 게스트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레이스를 수놓은 모자를 선물로 받아들고선 "집에 가서 이 레이스 한 땀 한 땀 모두 떼어내겠습니다"라고 농담을 던진다.

35년간 기복은 있었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정상급 MC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캐릭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연사로 초청됐을 때 강연 제목이 '꿈을 갖지 마라'였다. "딸에게 초청 연사들이 보통 무슨 얘기하냐고 물어보니 '다 자기 자랑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난 반대로 갔지. 꿈을 갖고 성공하려고 살면 피곤하다고. 꿈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삶 자체에 충실하라고 해줬어요. 애들이 좋아하대."

스스로는 피곤하게 살고 싶어한다. 지금은 '진짜카메라'를 '몰래카메라'와 나란히 자신의 방송 경력에 새겨넣을 수 있는 쇼로 만드는 게 꿈이다. "제 이름을 건 쇼를 하자는 제의도 많았어요. 근데 지금 '이경규 쇼'를 하다가 망하면 제가 망해요. 천년만년 해야 하는데 그럼 큰일 나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