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22 10:40

바쁜 아침 시간이다. 퇴직한 나야 바쁠 일도 없지만, 아직 시집 안 간 딸에게 무엇이라도 한 입 먹여 출근시켜야 맘이 편한 법이다. 요즘 애들이 다 그렇듯 요리조리 안 먹고 나갈 궁리만 하는 딸에게 입맛 당기게 하는 맛을 찾아 아침마다 헤맨다.

아침 어스름에 잠이 깨었다. 다시 잠들려 해도 잠은 안 오고 벌떡 일어나 뭐 먹여서 보낼까 궁리에 잠겼다. 전도 어제 해 주었고 주스만 한 잔 갈아 먹여 보내? 그건 왠지 아침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피하는 것 중 하나다. 그러니 자연히 아니다.

‘ 아~~ 그렇지! 그거야, 그 거라면 지가 안 먹고 배겨.’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고 냉동고 문을 열었다. 동그랗게 전처럼 만들어 얼려 놓은 삼겹살을 꺼내고 뒤 베란다에 들어가 감자 한 개를 들고나온다.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 껍질을 까고 채를 썬 다음 굵은 소금을 아주 살짝 서너 알 뿌려 놓는다. 요리 이름? 모른다. 거창하게 요리라 할 것도 없는데 그래도 이름은 있겠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얼마 전에 일본 홋카이도에 갔었다. 좋아하는 각종 연어 요리에 질리고 킹크랩, 대게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그것마저 질린 저녁 가이드와 함께 들어간 식당. 풍경은 둘도 없는 우리네 갈비집 풍경이다. 그러니까 연어에 질리고 킹크랩, 대게에 질린 우리에게 한식을 먹여 주겠다고 들어갔는데 나온 음식이 생소하다.

[시니어 에세이] 감자 삼겹살 구이

채 썬 감자가 전 모습을 하고 프라이팬 비슷한 팬에 담겨 있다. 뭐지? 조심스럽게 한 젓가락 떼어 입에 넣었는데 맛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고 부드럽게 익어 직화구이 특유의 불 맛과 함께 식감이 더없이 좋다. 간이 세지 않으니 심심하고 담백하다.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당긴다.

다시 한 젓가락을 집어 든다. 그런데 어럽쇼? 이건 뭐람? 자세히 들여다보니 삼겹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이리저리 뒤집어보아도 삼겹살이다. 삼겹살을 감자처럼 굵게 채를 썰었다. 굵게 채 썬 삼겹살을 밑바닥을 깔고 그 위에 채 썬 감자를 올리고 구원 낸 음식이다. 모두 맛있다고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만든 음식이 이것이었다. 이름도 모르지만, 국적도 정확히 모르지만, 맛 하나는 끝내주었으니 식구들에게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되지 않는다. 맛이 그 맛이 나지 않는 탓이다. 난관은 맛뿐이 아니었다. 뒤집어야 하는데 뒤집자면 다 흩어지고 만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요즘은 우리 식구들 좋아하는 음식 1위로 올라섰다.

딸이 부스스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서둘러야 한다. 프라이팬에 채 썬 삼겹살을 깔고 소금과 후추를 살살 뿌린다. 채 썬 감자에 부침 가루를 살짝 묻혀 삼겹살 위에 올려놓고 불을 최대한으로 낮추어 준다. 기름을 두르지 않는 건 삼겹살 기름이 나오는 탓이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얼른 뚜껑을 열고 뒤집어 놓는다. 삼겹살이 노릇노릇 알맞게 익었다. 내 입에서도 사르르 군침이 돈다. 오븐에 요리하면 더 쉽게 더 맛있겠지 하면서도 프라이팬을 고집하는 건 평소 하던 방법이 더 익숙한 탓이다.

딸아이가 휙 하고 옷 갈아입으러 들어가나 싶더니 다시 나와 식탁에 주저앉는다. ‘그럼 그렇지, 지가 안 먹고 배겨’ 아침부터 삼겹살이냐 싶지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고소하고도 담백한 음식이다. 채소 주스와 같이 들면 심심하고 짜지 않으면서 바쁜 아침 시간엔 제격이다.

많은 사람이 전통 음식을 계승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전통 음식도 흐르는 세월 속에 변해 왔다.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그 시대의 입맛에 맞추어 변해 왔다. 변해가는 세월 속에 이 음식 하나를 추가한다. 이름하여 감자 삼겹살 구이라 이름 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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