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밥할 생각 하니 한숨만 나오네….”
“그러게 말이야.”
“에휴~ 또 시작이지 뭐.”
등을 마주 대고 앉는 의자 뒤에서 한숨이 넘어오는 듯했다. 최근 해외여행을 끝내고 한국행 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대기석에서였다. 새까만 유리창 너머 명료한 달을 바라보며 시적 상념에 빠져있던 참이었다. 힐끗 돌아보니 적어도 예순은 훌쩍 넘어 뵈는 파마머리 네댓이 조르륵 앉아있었다. 하기야 거반 40년 가까이 밥을 해왔을 테니 오죽하랴. 전업주부가 아니었던 나 또한 퇴직 후 기껏 몇 해, 하루 한두 끼 밥하기도 버거워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냐고 내게 묻는다면, 멋진 구경 이전에 ‘삼시 세끼 해주는 밥,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답할 판이다. 그날 대기석을 채우고 있던 대다수 중년 이상의 한국 주부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하게 답하지 않았을까. 부부동반도 보였다. 어쩌면 남편은 퇴직하고 ‘밥벌이는 할 만큼 했다’며 여행에 나섰을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밥하기는 끝이 없다’며 귀국도 전에 한숨이다. 밥은 전기밥솥이 다해주는데 무슨 밥하기 타령이냐고 한다면, 장 봐서 찬 만들어 밥상을 차리고 치우기까지가 밥하기란 걸 모르는 얘기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남편은 직장에서 먹는 덕에 점심은 신경 안 쓰다가 남편의 퇴직으로 다시 밥을 하게 됐다면 ‘삼식이’ 시리즈가 절로 나올 성싶다. 집에서 한 끼도 먹지 않는 ‘영식 님’, 두 끼 먹는 ‘이식 씨’, 세 끼 꼬박꼬박 먹는 ‘삼식이x’. 끼니 사이 간식까지 먹는 경우는 차마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의 호칭이 붙는다. 밥벌이에는 싫대도 오는 정년이 밥하기에는 좋대도 오지 않을망정 본분이거니 해오던 일을 접을 수도 없어 입으로 푸는 게 아닐까.
‘밥벌이의 지겨움’
자식들이나마 빨리 결혼해서 한 입 덜어주면 좋으련만 그마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설혹 결혼했어도 며느리 밥을 얻어먹는다는 건 언감생심이고, 딸과 사위에 손자 밥상까지 도맡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눈치껏 돕는 가족이 있다 해도 어디까지나 돕는 것일 뿐, 밥하기의 주체는 아니다. 젊었을 땐 꼬물꼬물한 아이들 돌보랴, 밥하랴 어찌 그리해냈을까. ‘주방장 9단’으로 닳고 닳은 일인데도 나이 들어가며 때때로 밥하기가 지겨워진다.
밥하기의 지겨움이라니 문득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이 떠오른다. 그는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고 토로했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고 썼다. 밥벌이와 밥하기 양쪽을 좇았던 나로서는 남의 돈을 버는 일에서 오는 고단한 지겨움이야말로 내 가족을 위한 밥하기에 댈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느꼈다.
문제는 밥벌이는 더하고 싶어도 그만해야 하고, 밥하기는 그만하고 싶어도 더해야 한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밥벌이를 그만두면 그 지겨움도 사라지고 더러는 그리워지기까지 하는데, 밥하기의 지겨움은 날로 깊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하기가 준비에서부터 뒤치다꺼리까지 식구가 함께하는 즐거움이 된다면 지겨움이 낄 자리는 없을 터이다. 변화를 못 견뎌하는 게 지겨움이니 때로는 주방장도, 음식도, 먹는 장소도 바꿔봄 직하다. 어쩌다 한 번쯤은 피자며 햄버거, 어느 날은 한강 변을 산책하다가 편의점에서 라면은 어떠랴.
식구는 ‘먹을 식(食)’에 ‘입(口)’ 자가 합해진 단어다. 같은 집에 살면서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그러니 밥벌이가 끝났다고 괄시하지 말고, 밥하기가 지겹다고 한숨지을 것 없이 함께 밥하고 함께 밥 먹어야 식구이지 않을까. 혼자 먹을 때는 대충 끼니를 때우는 식이 되기 일쑤지만 함께 먹기 위해 밥을 하면 보다 나은 식사도 할 수 있다. 더구나 늙어갈수록 ‘밥심’으로 산다는데 함께 먹는 밥, 특히 함께 만드는 식탁은 몸은 물론 마음에도 힘을 준다.
‘식시오관(食時五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중국의 만리장성은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거대한 만리장성이 지금껏 무너지지 않는 비결이 ‘밥풀’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중국의 한 문화유적 관련 연구소는 만리장성 보수공사 중 돌과 돌 사이에서 발견된 접착물질을 연구한 결과 찹쌀과 동일했다고 밝혔다. 돌과 돌을 붙일 때 찹쌀죽을 쒀서 발랐다는 것이다. 만리장성도 수백 년 버티게 하는 돌 사이 밥풀의 힘, 1백 년은 너끈히 버티게 할 사람 사이 밥의 힘이 아니 될 수 없다.
힘을 더 보태주는 것도 있다. ‘규합총서’에 나오는 ‘식시오관(食時五觀)’이다. 옛날 사대부들이 밥 먹을 때 생각하라고 가르쳤다는 다섯 가지다. 첫째,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이 식사를 위해 공들인 사람들을 생각하고, 둘째, 음식 맛을 너무 따지지 말고 오히려 내가 이 식사를 할 만큼 착한 일을 했는가 생각하고, 셋째, 많이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지 말며, 넷째 이 식사가 내 몸에 좋은 약이라고 생각하고, 다섯째, 내가 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 바른 사람인지를 생각하면서 먹으란 것이다.
먹을 때는 이런 생각, 먹은 후엔 행동으로 뒤치다꺼리를 솔선한다면 함께 늙어가는 세월을 넉넉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겉 사람은 낡으나 속사람은, 그리고 속사랑은 날로 새로워질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