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한 달치 식량, 부서진 통신장비, 외로움… 그에게 남은 희망은 '위트'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탐사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화성에서 모래 폭풍에 휩쓸려 실종된다. 탐사대장 루이스(제시카 채스테인)와 동료들은 그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화성을 떠나지만 마크는 멀쩡히 살아 있다. 통신장비가 부서졌고 식량이 31일치뿐이라는 게 문제. 마크는 스스로 물과 식량을 조달하면서 NASA와 연락할 길을 찾는다. 지구 밖 8000만㎞에 고립된 이 우주인,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10월 8일 개봉하는 영화 '마션'(감독 리들리 스콧)은 궁극의 아웃도어 체험이다. 무대는 정글이나 무인도가 아니라 화성이다. 다행히 마크는 "어디서든 식물을 재배하면 그곳을 점령한 것"이라 믿는 식물학자다. 그는 똥을 이용해 화성산(産) 무공해 유기농 감자를 생산한다. NASA가 최근 "화성에 액체 상태의 물이 흐른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마크는 과학적으로 가능한 다른 방법으로 물을 만들어낸다. 궁리 끝에 NASA와 교신에 성공하는 대목은 아날로그적인 수공업이라서 더 반갑다.

우주인은 죽음의 공포를 훈련한 사람이다. 기저귀를 찬 채 살아 으르렁대는 로켓에 앉아 있다가 수직으로 발사된 그들은 8분 42초 만에 무중력 우주 공간으로 던져진다. '마션'은 그렇게 지구를 떠난 마크가 애초 계획에 없던 1년 반을 화성에서 홀로 보내는 이야기다. '아폴로 13' '캐스트 어웨이' '그래비티' 같은 생존담과 닮아 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리들리 스콧이다.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등 SF 영화에서 솜씨를 발휘한 그는 지난 10년간 관객에게 실망감만 한 보따리 안겼지만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마션'으로 증명했다. 동료들과 NASA가 실종된 우주인을 구조하는 험난한 여정을 사뭇 과학적으로 담아내 여느 생존기와는 다른 길을 냈다. 한 사람(맷 데이먼)을 구하려고 여럿이 죽음을 무릅쓴다는 점에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화성 버전과 같다. 생존 본능과 죄책감, 책임감을 잘 뭉뚱그렸다.

희망적인 SF 영화는 희소가치가 있다. 마크는 포기하지 않는다. 취향과는 딴판인 디스코 음악을 들으면서 절망을 밀어내고 감자에 진통제를 뿌려 먹으면서 고통을 잊는다. 맷 데이먼은 그런 인물과 잘 포개지는 배우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천연덕스러운 위트를 던지면서 우주 재난을 견뎌내는 배역을 그 말고 또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

'마션'은 2013년 가을의 '그래비티'(관객 322만명), 지난해 가을의 '인터스텔라'(1027만명)처럼 될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이 SF 블록버스터는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 사이에 있다. 과학적으로 잘 만들었지만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주에 혼자 남는 게 어떤 재난인지 뼛속까지 일러준 '그래비티'에 비하면 기술적 야심이 부족하다. 지구에 딸을 두고 떠난 아버지 이야기인 '인터스텔라'와 견주면 주인공과 관객의 정서적 교감이 헐겁다. 하지만 한국 부모 관객의 교육열을 감안하면 흥행 로켓을 쏘아 올릴 연료는 충분해 보인다. 원제 'The Martian(화성인)'. 142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