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요제 무대처럼… 부스 들어갈 때마다 설레"

"저를 잊고 계신 분들이 많겠죠? 그래도 전 제 노래를 좋아해 주던 분들을 항상 기억하고 그리워했어요."

반가운 얼굴이다. 1982년 대학가요제에서 '참새와 허수아비'로 대상을 받은 조정희(53·사진)가 돌아왔다. 지난달부터 EBS FM '오후N음악'을 진행하고 있는 그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슬픈 운명의 사랑을 노래하던 그때 목소리 그대로 청아했다. 지금도 고음은 자신 있다. 요즘 애창곡은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라고 했다.

"꿈이 이뤄진 거죠. 라디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DJ를 꿈꾸잖아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것도 라디오 덕분이다.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후 잠깐 활동할 때도 라디오 출연이 가장 좋았다. 꿈이 이뤄진 초보 DJ는 의욕에 넘쳤다.

방송은 되도록 생방송으로 진행하려 한다. 가수라면 라이브를 잘해야 하듯, 실시간으로 청취자들과 소통하는 게 DJ의 본분이라고 생각해서다. "일할 때 제 프로그램을 듣고 힘을 낸다는 우편배달부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그 딸이 곧바로 문자로 사연을 보내온 적이 있어요.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라디오의 매력이죠." 사회 각계의 명사들을 불러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에도 그의 야심과 사심(?)이 들어가 있다. "김기덕 감독을 꼭 초대하고 싶어요. 사석에서 잠깐 본 적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분 같았거든요. 제 노래를 좋아하신다고 하기도 했고(웃음)."

그는 '참새와 허수아비'로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지만,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하지 않았다. "대학가요제엔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나갔을 뿐 가수가 되겠단 생각은 없었어요. 우승해놓고 활동을 안 하니 화내는 PD도 있었어요." 졸업 후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가수 활동은 자연스럽게 접었다. "간간이 방송에 나가서 '참새와 허수아비'를 부르면 그때야 아이들이 '엄마가 가수였어'라는 표정을 짓죠. 예전엔 제가 캠퍼스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제 뒤를 구름 떼처럼 따라다녔다고 해도 안 믿어요(웃음)."

지금도 가끔 마트나 카페 같은 곳에서 귀신같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면 '가수를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하곤 한다. "매일 DJ 부스에 들어갈 때 대학가요제 무대에 섰던 그때처럼 설레요. 요즘 저는 그때 조정희 그대로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