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심장 소리 들으며 기증자 고마움 되새겨요"

40~60대 중년의 다섯 남자가 지난 3일 한계령을 출발해 설악산 대청봉으로 향했다. 영상 4도에 칼바람까지 가세해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추위에 면역 억제제를 챙겨 먹으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중청대피소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 대청봉에 올라선 이들에게 주변 등산객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진정한 강(强)심장"이라고 했다.

이들은 말기 심부전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얻은 사람들이다. 다들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좀 더 분명히 듣고 싶어 산에 오른다"고 했다. 심장 박동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은 이제 건강을 되찾았다는 증거지만 가끔 그것이 두렵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게 새 생명을 주고 세상을 떠난 기증자의 갚을 길 없는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 무뎌질까 겁나요. 산이 가파르고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힘차게 뛰는 심장에서 기증자의 따뜻한 마음을 되새깁니다."

수술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까운 동네 산부터 다니던 다섯 남자. 그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목표로 세웠고, 이번에 그 첫 단계로 해발 1708m 대청봉에 섰다. '기증자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고 그분들 몫까지 건강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음을 기증자 가족에게 보여주자'는 취지로 김현중(43· 2009년 이식)씨가 제안했다. 이들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모인 '다시 뛰는 심장으로'의 회원들이다. 김씨는 "올겨울에 태백산, 내년 봄에 오대산, 가을에는 속리산에 오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지리산 천왕봉에도 등정한 조찬규(52·2014년 이식)씨는 "기증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스물한 살 뇌사 청년'이란 사실이 전부지만 그가 어떤 생을 살았을지 상상하며 산에 오른다"고 했다. 심부전은 심장 이상으로 신체에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말기 심부전은 이식이 유일한 해법이다. 법률상 기증자와 기증받은 사람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는다.

새 심장을 얻어 건강은 회복했지만 이들은 두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그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다. 기약 없이 기증자를 기다리며 언제 꺼질지 모를 촛불 같은 생명을 이어가는 심부전 환자 병동이다. 심부전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40일 만에 깨어난 적도 있는 조중욱(57·2014년 이식)씨는 환자와 가족들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기증자가 나타나길 무력하게 기다리는 불안과 좌절은 겪어 본 사람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 아픔을 아는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어요. '곧 거짓말처럼 기증자가 나타날 테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해 드려요. 뻔한 위로지만 이식받아 건강을 회복한 저의 얘기여선지 꽤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설악산 등반에 나선 지난 3일은 강헌(49)씨가 이식 2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했다. 그날 밤 이들은 중청대피소에서 초코과자로 케이크를 만들어 '제2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 자리에서 맏형 격인 박주락(61· 2007년 이식)씨가 말했다. "우리는 두 사람 몫을 살아내야 하니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

심장·간·신장 등 장기 이식 대기자는 국내에 2만6749명(2014년 말 기준)에 달하지만 기증은 작년 2471건에 불과했다. 열 명에 한 명꼴이다. 심장은 그나마 나은 편이어서 환자 342명 가운데 118명이 기증받았다. 전체적으로는 해마다 1000명 이상이 기증을 기다리다가 생을 마감한다. 박주락씨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니기를 기도하는 환자와 가족이 수두룩하다"며 "장기 기증이 활발해지도록 많은 분이 관심 가져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