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메라로 이야기를 쓴다. 이야기를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글로 쓴다. 글로 표현하는 종류는 여러 갈래다. 수필, 소설, 시, 희곡, 노랫말, 동화, 편지, 문자 등이 있다. 말로서 표현한다. 좀 더 재미있고 동심에 어울리게 하는 구연동화도 있다. 나는 카메라로 이야기를 쓰는 자칭 ‘포토스토리텔러’다. 굳이 우리말로 바꾼다면 ‘사진 이야기꾼’이다. 한 장의 사진에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는다 하지 않고 카메라로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사진이 영상언어가 되는 셈이다.
한 장의 사진에 세계가 들썩인다. 난민 어린아이의 주검 사진 한 장이 세상의 민심을 바꾸어 놓았다. 사진의 폭발적 효력이다. 세상은 사진 한 장에 울고 웃는다. 한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의미 있는 사진이 호소력이 훨씬 크다.
나의 작은 보금자리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논에 벼가 싱그럽다. 이런 곳에 사는 나는 행복하다. 두들기던 컴퓨터 자판에서 손을 머문 채 창밖을 내다본다. 파랗던 벼 잎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익어가는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수줍은 듯 잎 뒤에 숨는다. 참새가 마당의 대추나무에 지저귀고 저만치 작은 동산의 숲에 까치가 운다.
안사람이 좋아하여 마당 한쪽에 심은 분홍, 하얀, 붉은 코스모스가 고개를 들며 아침을 맞는다.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들판의 논이 누렇게 익어간다. 엊그제 모내기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 사이 벼가 여물어간다. 봄 여름을 담아 가을을 그린다. 세월의 흐름이 눈에 보인다. 나는 이런 변화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한 편의 가을 이야기를 쓴다.
농부의 땀방울이 보이고 스쳐 지나가던 빗줄기도, 중천에 졸던 정오의 태양도, 자정이면 은하수 함께하던 시간도 되뇌어진다. 초승달, 하현달, 천둥·번개도 지나갔지. 이슬방울이 영롱한 고개 숙인 벼 이삭에 아침 햇살이 찾아들며 하루의 세월이 또 시작된다. 벼 한 알 한 알에 숱한 세월이 꽉꽉 들어찼다. 여름 하늘을 날던 잠자리 벼 이삭에 마지막 쉼터를 찾고 작은 여치도 함께 논다. 물을 뺀 논배미 물꼬에 작은 수초가 한 장의 수채화를 그렸다. 익어가는 가을에 카메라로 쓴 한 편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