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주인 잘 돕고 무사히 돌아와주면 그걸로 충분"

시각장애인들은 안내견을 '죽어서도 천국 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라고 한다. 오직 주인만을 위한 충직한 생(生)을 표현한 말이다. 안내견을 양성하는 국내 두 곳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지난 20여 년간 총 212마리(삼성 182마리, 협회 30마리)를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 분양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36마리가 1세대 안내견 훈련사 이성진(50)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수석훈련사를 거쳐갔다.

올해로 20년째 안내견을 길러온 이씨는 일본 대학에서 농업경영을 공부하던 유학생이었다. 1989년 우연히 본 방송 프로그램이 진로를 바꿨다. "일본 안내견의 임무를 소개하는데 정말 대견하더라고요." 그 길로 부모 몰래 전공을 사회복지학으로 바꾸고 훈련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4년간 훈련사로 일하다가 2001년 귀국해 삼성화재 훈련사가 됐다.

"개를 너무 좋아하면 이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예뻐하고 칭찬만 하면 학습에 방해되거든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훈련사가 개한테 100의 사랑을 주었다 쳐요. 그럼 시각장애인은 120, 130은 줘야 개가 따르거든요. 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조금만 예뻐해야 해요."

안내견은 대부분 온순하고 적응력 뛰어난 리트리버종(種)이다. 그렇다고 모든 리트리버 강아지가 안내견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70%는 3개월이면 탈락해요. 그런 개들은 일반 반려견으로 분양하죠. 장애인의 안전을 생각하면 엄격할 수밖에 없어요."

훈련보다 힘든 것은 분양을 원하는 시각장애인과의 면담이다. 안내견 졸업생은 한 해 고작 10마리인데 안내견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은 1000명이 넘어서다. 상담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주인의 성격, 직업, 걸음걸이, 건강, 생활환경을 꼼꼼히 따진다. "사위나 며느리 고르는 부모 심정이에요. 자식 같은 개를 아무한테나 보낼 순 없죠. 안내견이 절실히 필요하면서 품성도 좋은 분에게 가길 바라죠."

그렇게 20년을 살았지만 반년 동고동락한 개를 보내는 건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처음 몇 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떠나갔는데 계속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새 주인 잘 도우며 지내다가 나중에 돌아와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사실은 아주 섭섭해요."

안내견학교에서 태어난 강아지는 1년간 '퍼피 워커(puppy walker)'라 불리는 자원봉사 가정에서 사람과 사는 법부터 배운다. 그 뒤 한 달간 안내견으로 적합한지 종합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통과하면 6개월 전문 훈련을 받는다. 열 살이 되면 '은퇴'해 고향인 학교로 돌아온다.

새 주인에게 갔다고 이씨와 아주 헤어진 건 아니다. 건강과 적응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매년 두 번 가정을 찾아간다. 그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이다. "나를 알아보고 달려들면 정말 가슴 벅차요." 다시 떼놓고 돌아가기 아쉽지만 시각장애인과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한다.

훈련은 주로 주택가나 번화가에서 한다. 주인이 실제로 다녀야 하는 도로·상가·대중교통 등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안내견과 함께 지하철 타면 놀라면서 내리라는 사람도 적잖았다. 내일(15일)은 제36회 '흰지팡이의 날(시각장애인의 날)'이다.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보행을 위해 사용하는 지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