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의 앙코르… 대견하네요"

"흥행 두 번 실패한 감독이 세 번째 영화를 찍는다는 건 힘든 일이죠. 근데 명필름이 저를 부른 겁니다. '복수는 나의 것' '박쥐' 각본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더군요. 그러더니 이 영화 각본을 꺼내는 겁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자신 있다. 시켜만 달라'고 했습니다."

'공동경비구역JSA'가 15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됐다. 지난 16일 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상영 후 관객을 만난 박찬욱(52) 감독은 "고전으로 남아 두고두고 감상하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되겠느냐"며 "'공동경비구역JSA'가 잊히지 않고 15년을 버텼다는 게 자부심을 준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를 디지털 포맷으로 옮겼다. "필름 상태가 점점 나빠져서 '안습(애처롭다는 뜻)'이었는데 디지털로 바꾸면서 사운드와 해상도를 강화했다"고 박 감독은 설명했다.

"타란티노나 봉준호 감독 같은 아날로그 필름 예찬주의자는 아니에요. 먼지 묻고 스크래치 생긴 필름이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소피(이영애)가 병실 방문하는 장면이 너무 밝게 찍혔는데 디지털 프린트로 바꾸면서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경비 근무 설 때 선글라스에 비친 카메라 몇 개도 이번에 싹 지웠지요."

영화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한 초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중립국 감독위원회가 파견한 소피 장 소령이 남한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북한 오경필 중사(송강호) 등을 수사하면서 의혹을 풀어나간다. 재개봉된 영화는 초대형 스크린(34m×14m)에 클로즈업된 배우 이영애의 미모, 송강호·이병헌·김태우·신하균의 15년 전 풋풋한 얼굴이 눈길을 붙잡는다.

"'함부로 헐뜯지 못하게 하겠다'는 태도로 만든 영화입니다. 골목 친구들 같은 분위기, 남북한 병사가 하나 돼 같이 노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강호씨가 가진 장난기, 형처럼 믿음직한 면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술로 밤도 많이 새웠지요. 국군 쪽(이병헌·김태우)은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강호씨가 부르면 다 왔어요."

박 감독에게 배우 넷은 이렇게 기억된다. "하균씨는 말이 없고, 시키는 대로 잘하죠. 강호씨는 생각이 많고 감독과 계속 의견을 나누고 싶어 해요. 병헌씨는 무궁무진한 카드를 내놓습니다. 다 그럴듯해서 조심해야 돼요. 태우씨는 고민과 망설임이 많죠." 페르소나(감독의 분신)를 묻는 말엔 "'박쥐'의 송강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관객 마음은 박찬욱도 모른다. '아가씨'를 준비 중인 그는 "'공동경비구역JSA'와 '올드보이'는 흥행이 어려울 것 같았고 '박쥐'는 잘될 줄 알았는데 결과는 정반대"라며 덧붙였다. "포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