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 같은 협상 "간첩을 맞교환하라"

'냉전(Cold War)'이라는 낱말은 차가우면서도 뜨겁다. 1950~60년대 미국과 소련은 거대한 방공호 같았다. 핵폭탄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채 간첩을 색출하기 바빴다. 밖으로는 얼음장이고 속으론 끓어넘치던 시절이었다.

오는 11월 5일 개봉하는 영화 '스파이 브릿지'(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차가운 전쟁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변호사 도노번(톰 행크스)이 1957년 뉴욕에서 검거된 소련 스파이 아벨(마크 라이런스) 대령의 변호를 맡으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반역자 소리를 들으면서 가족 안전까지 위협받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신념을 고수한다. 소련 영공을 정찰 비행하던 조종사(오스틴 스토웰)가 피격돼 붙잡히자 미국 정부는 스파이를 맞교환하는 비밀 협상을 도노번에게 맡긴다.

영화는 화가로 위장해 살아가는 아벨의 모습을 담은 오프닝부터 관객을 꽉 움켜쥔다. 카메라 앵글과 배우의 표정, 음악에 감정을 담고 사건을 풀어가는 스필버그의 솜씨는 여전하다. 도노번은 아벨 말마따나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다. 보험 전문 변호사답게 "아벨을 살려두는 게 장차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법정을 설득한 뒤 집으로 총알이 빗발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스파이 브릿지'는 미국의 정찰기 조종사나 아벨이나 조국을 버리지 않고 신념을 지켰다고 말하면서 묻는다.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

동베를린은 혼란스럽다.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고 있고 미국 유학생 한 명이 동독에 억류되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는다. 일대일이 아니라 2대1 맞교환을 이끌어내야 한다. 실화가 바탕이 된 이 영화는 보험 전문 변호사가 공포를 이겨내고 원칙을 지키면서 어떻게 시험대를 뚫는지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지난주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는 단숨에 내년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후보로 꼽히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의 만남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캐치 미 이프 유 캔' '터미널'에 이어 네 번째다. 음산한 다리에서 벌어지는 '스파이 브릿지'의 맞교환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밀러 대위(톰 행크스)가 쏜 권총이 독일군 탱크를 부수는 기적처럼 짜릿하게 기억될 것이다. 신뢰하는 배우를 다시 기용한 스필버그 감독은 "행크스는 창의성을 가득 실은 거대한 선박 같다"고 말했다. 행크스는 "스필버그 영화에 또 참여하다니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라고 받았다.

초상화는 그 주인공이 끌고 온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스파이 브릿지'에서 아벨이 도노번에게 남긴 선물을 보면서 관객은 잠시 생각에 잠길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다가온다. 마크 라이런스는 톰 행크스 못지않은 존재감을 뿜어냈다.

'파고'의 코엔 형제가 시나리오를 썼고 5500만달러(약 621억원)를 들여 미국·독일·폴란드에서 촬영했다. 우리 관객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섬세하고 강렬하다. 거장다운 몰입감이다. 원제 'Bridge of Spies'. 135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