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사랑으로 '작은 지구촌'을 일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고든 에드먼즈(63)와 아내 마르셀라(77)씨 집에 가족이 모두 모이면 '작은 지구촌'이 된다. 한국, 라오스, 브라질, 필리핀, 미국에서 태어난 장애 아동 15명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하나둘 입양돼 자랐다. 흑인 혼혈에 장애까지 가져 입양이 쉽지 않았던 아이들도 부부는 기꺼이 품에 안았다. 10살 넘도록 양부모가 없던 9명은 그렇게 에드먼즈 부부를 만나 진짜 가족을 갖게 됐다. 부부는 아이들이 출신국의 언어와 문화를 잊지 않도록 식탁에 모였을 때만 영어로 말하게 했다. 마당에서는 한국어·라오스어·타갈로그어·포르투갈어가 섞여 들렸다. 지금은 모두 독립했다.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막내딸 칼라(29)만 부부와 함께 산다.

에드먼즈 부부는 22일 서울 수도조리직업전문학교에서 불고기와 잡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부부는 홀트아동복지회가 입양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든 '모국 연수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일주일째 한국에 머물고 있다. 남편 고든은 주한 미군이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1세대 입양인'이다. 한국 이름은 김창진이다.

고든은 "아픔이 있었기에 더 사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친어머니가 저를 너무 사랑했기에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도 '너희는 버림받은 게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 기뻐요."

그는 35년 전 소년보호기관 상담원 시절에 사회복지사 마르셀라를 알게 됐다. 둘은 결혼하며 한 가지를 약속했다. '꼭 어려운 아이들을 입양해 기르자.' 결혼 후 아이 둘을 낳았지만 모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종 차별에도 시달렸다. '백인 여자가 흑인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쫓겨나곤 했다. 마르셀라는 "그런 아픔을 겪었기에 차별받는 우리 아이들을 더 아낄 수 있었다"고 했다.

라오스에서 온 샘(48)이 맏아들이 됐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아이다. 이어 지적장애, 심장병, 하반신 장애를 가진 재키(45), 제임스(44), 토머스(43) 3남매를 한국에서 입양했다. 주한 미군인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한국인 어머니는 몸이 아파 돌볼 힘이 없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7년, 가족은 총 17명으로 늘었다.

에드먼즈 부부는 직접 농사짓고 가축도 기르며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웠다. 테니스 코치였던 고든은 주말이면 아이들에게 운동도 가르쳤다. 마르셀라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러 가면 몸이 덜 불편한 아이들이 형제자매를 돌봤다. 열여섯 살에 입양돼 온 재키는 한국 요리를 잘해 김치찌개를 끓여 내놓곤 했다.

치유된 아픔은 사랑이 됐다. 브라질에서 동생 칼라와 온 팔로마(31)는 화상으로 두피가 다 벗겨진 상태였다. 지금은 간호사가 돼,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하겠다'던 꿈을 이뤘다. 필리핀에서 온 엘리자베스(35)는 양어머니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며 사회복지사가 됐다. 1㎏도 안 되는 초미숙아로 태어난 존(31)은 지난해 모국인 한국을 찾았다. 그는 약혼녀와 한국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로 약속했다.

출신국에서도 차별받던 아이들이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독립하자 주변에서는 '기적'이라고 했다. 부부의 희생이 기적을 낳았다고 했다. "많은 분이 우리를 보고 대단한 희생이라고 해요. 우리는 희생해가며 아이들을 데려온 적 없어요. 한 명 한 명 늘 때마다 감격스럽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