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아름다운 날이 봄에서 가을까지 이어지는 곳은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이다. 붉은 빛이 꽃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시간이 흐르면 끝이 나버리는 삶. 꽃잎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고개를 숙일 것이다. 선운산의 꽃도 붉은 빛이 절정을 이룬다. 비 내리는 산길에 영롱한 이슬을 만들어내면서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지난해보다 꽃이 얼마나 더 피었을까? 올해는 그 절정의 시기를 만날 수 있을까? 꽃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대한 변화가 항시 궁금하여진다. 지난해보다 더 진하게 꽃들을 피우고 있는 선운사 입구에 도착하자 조금씩 내리던 빗줄기가 숲을 촉촉하게 적시기 시작하였고 화려한 꽃무리는 비를 맞아 붉은 빛을 더 선명하게 피워내고 있었다.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알고서도 그 곳을 찾았던 것은 화려한 꽃이 순식간에 지나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간 선운사의 꽃무릇을 보러 다니면서 깨우친 것은 그 화려함의 절정에서 '꽃이 지는 것'이 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하루나 이틀 서울에서의 일정 때문에 늦어지면 아름다운 붉은 색은 사라지고 빛바랜 붉은 색을 띄우면서 꽃술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의 처연함이 거북하여 절정의 순간을 열심히 기다리곤 하였다.
비가 내리기 때문인지 몇 대의 관광버스만 주차장에 있을 뿐 매우 호젓한 가을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가을비를 맞아 꽃술에도 꽃잎에도 영롱한 구슬을 꿰어 놓은 듯 방울방울 이슬이 맺혀있는 모습이 더 빛나 보였다. 꽃이 피어있는 모습만 바라보았고 지는 잎은 거의 기억에 없을 정도의 단순함을 지니고 있는 나의 시선에 어느 날 부터인가 꽃이 지는 모습이 남겨지게 되었다.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 순간이면 좋겠네' 라는 젊은 시인 최영미의 시 한 구절이다. 화려한 절정의 날을 남기고 떠나간 그리움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선운사를 갈 때면 항상 동행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 미당 서정주님과 최영미 시인의 시구절이다. 시인들의 시어로 바라보는 고창과 선운사 꽃들의 향연은 힘들게 피어나는 시간들과 지는 순간의 덧없음을 함께 보여준다. 비와 바람과 붉은 꽃의 세상을 다녀온 하루가 꿈길처럼 가을 햇살을 따라 1년 후의 기다림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