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7 10:33

[시니어 에세이] 중독

유행과는 거리가 먼 내가 휴대전화만큼은 남들보다 일찍 장만했다. 한손에 쥐기도 벅찬 휴대폰은 전쟁 속에서나 본 무전기 비슷한 크기여서 핸드백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직장인이었고 아들이 해외에 나가 있었기에 언제 어느 때나 통화를 주고받기엔 그 큰 휴대전화를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휴대전화는 누구의 손에나 스마트폰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늘 스마트폰이 손에 있었고 ‘카톡’이니 ‘밴드’니 하는 것에 가입되어있었으니 이 ‘페이스북’도 당연히 가입되어 있었다.

늦은 밤.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이상야릇한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00가 회원님을 콕 찔렀습니다.’ 나를 찔렀다고 어디에? 왜? 무엇 때문에? 의문이 꼬리에서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이리저리 살펴봐도 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인데 왜 나를 찌르지? 내가 뭘 잘못 했나? 의문이 꼬리에서 꼬리를 무는 데도 아직 시원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아도 그저 아리송할 따름이다.

사실 난 이런 소통 방법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나를 찾아든 사람이라도 난 그저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내가 나서서 누군가를 찾아가는 법도 없고 나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다. 트위터에 대해 솔직한 내 마음은 좀 겁나는 분야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콕 찌르는 것도 그렇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내 생활을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정보란에도 최소한의 사항만 올리고 만다.

어느 날, 신문에 난 기사 하나를 읽으며 내 생각이 옳았다는 마음이 더 굳어졌다. 미국에서는 이미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검색해 정치·사회·문화적 성향을 파악하고, 그 자료를 가지고 직원 채용을 한다는 이야기다. 내 자식들이 이제 막 세상이라는 바다에 나갔는데 혹시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내 자식을 판단할까 두려웠다. 물론 기우(奇遇)겠지만 커 가는 자식을 돕지는 못할망정 나와 생각이 다른 상사나 지인들이 내 자식까지 나로 바라볼까 걱정 아닌 걱정이 되었다. 이미 세계는 내가 바라볼 수 없는 곳까지도 촘촘하게 그물이 쳐져있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46년에 쓴 소설 '1984'에서 이미 텔레스크린을 언급했다. 가정집과 거리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체주의 권력은 개인의 모든 사생활을 24시간 감시하며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고 했다. 그의 예언이 설마 했는데 현실로 다가왔으니 무서운 일이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보고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CCTV라는 텔레스크린이 촘촘히 감시하고 있는 세상이다. 그것 때문에 각종 범죄자의 도주로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속속 잡히는 세상이다. 어딘가에서 누구랑 몹쓸 시비라도 붙으면 어김없이 인터넷에 올라와 전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고 심하면 처벌까지 받는 세상이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 순식간에 화면 속 인물은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신상이 상세히 공개된다. 만약에 그들이 인터넷상에서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고 죄를 지었더라도 관계있는 몇 사람만이 알고 말았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제 어느 때 닥쳐올 수도 있는 실수 하나가 나를 파멸로 몰아갈지도 모르는데 부나비처럼 산다. 세상에 거미줄같이 쳐있는 CCTV란 촘촘한 그물을 향해 한 발 한 발 들어간다. 이건 틀림없는 중독이다. 이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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