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7 10:39

[시니어 에세이] 도토리의 유혹

가을 오면서 부터 여기저기 도토리가 길에 널려있다. 산속 마을이라 집 주변엔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키가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길이 어두워진다. 산책하려고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데 몇 발짝 못 가서 땅에 널브러져 있는 동글동글한 도토리가 눈에 띄었다. 잠깐 허리를 굽혀 주었을 뿐인데 조그만 가방에 하나 가득하다. 재미있다.

집에 가져온 것이 잘못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도토리묵 가루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도토리를 까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하나 껍질을 까야 하는데 시간도 적지 않게 걸리고 힘도 들여 하니 손목도 아프다. 이틀에 걸쳐 껍질을 가고 믹서에 갈아 가루를 내어 나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물을 갈아주는 일은 정말 번거롭다. 잘못 덜어내면 가라앉은 가루가 물에 휩쓸려 흘러내리므로 조심조심 덜어내야 한다. 이제 물을 덜어내고 넓게 펴서 가루를 건조시켜야 한다. 가루를 건조하는 일도 며칠이나 걸린다. 이렇게 힘들게 해서 도토리묵 가루가 탄생 되는 것이다.

어제도 산책하러 나갔다가 고민에 휩싸였다. '주워? 말아? 그래도 갈색의 싱그런 빛을 내는 도토리가 너무 예쁘잖아? 아냐. 그냥 가.' 몇 개 주웠다가 다시 숲에 던지고 이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였다. 지나가는데 숲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툭 툭 툭 툭' 차를 타고 가는데 차 지붕 위로 '퉁'.

작년 겨울 생각이 난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안테나선이 끊어지는데 AS를 부르니 청설모 짓이란다. 창밖을 내다보니 청설모는 높은 나뭇가지를 자유롭게 타며 즐겁게 놀고 있다. 먹이가 없어서 안테나 줄을 뜯어 먹나 생각했었다. 먹거리가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괜한 욕심을 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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