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사이드] 재취업·창업 돕는 아웃플레이스먼트 뜬다

한 증권사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김모(54)씨는 27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올 7월 퇴직했다. 아들이 대학생인 데다가 매월 이자 등 150만원의 고정 지출이 있던 김씨는 종교시설 관리자로 취직해 하루 4시간을 일하고 한 달 170만원을 번다. 남는 시간에는 '빅데이터 전문가' 자격증 공부를 한다. 아웃플레이스먼트 기업과 상담한 결과, 당장 취직해 1~2년 더 일하는 것보다 은행 전산실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게 낫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성·두산그룹 같은 대기업은 물론 증권·조선·건설장비 업종 등을 중심으로 희망퇴직 같은 감원(減員)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아웃플레이스먼트' 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가라앉는 헤드헌팅, 뜨는 아웃플레이스먼트

헤드헌팅은 현재 갖고 있는 능력으로 당장 새 '일자리'를 찾아주는 게 목적인 반면, 아웃플레이스먼트는 전직(轉職) 지원을 통해 남은 생애 전반의 설계를 돕는 게 다르다. 업계에서는 "활황(活況)일 때는 헤드헌팅이, 불황(不況)일 때는 아웃플레이스먼트가 뜬다"고 말한다. 경제 상황이 여유 있을 때는 헤드헌팅이 활발하지만 일자리가 줄고 구직자(求職者)가 대량 쏟아지는 상황에선 이들의 경쟁력 자체를 높여주는 아웃플레이스먼트가 뜬다는 것이다. 정도영 커리어컨설턴트는 "기업들이 헤드헌팅 기업에 내야 하는 상당한 성공 보수를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아웃플레이스먼트가 활성화되는 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정부는 올해 '고령자고용촉진법'을 개정해 2017년부터 300명 이상 규모의 기업에는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아웃플레이스먼트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 초부터 정부는 퇴직을 앞둔 50세 이상 근로자에게 퇴직 전부터 재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최대 14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대 수명은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 전에 일자리 정보를 모으고 재취업 준비를 하는 게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적극적이다. 삼성전자와 포스코는 경력개발센터와 퇴직자 전직(轉職)지원센터 등을 직접 운영 중이다. LG전자 등은 회사가 아웃플레이스먼트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퇴직관리지도사 양성과정'을 열어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들에게 "왜 직원들이 전략적으로 퇴직을 해야 하는지" "선진 기업은 퇴직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등을 가르쳤다. 1기부터 지금까지 133명이 이 과정을 수료했다.

◇글로벌 500대 기업 중 70% 이상 도입

현재 미국 경제지(誌)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70% 이상은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퇴직·해고 과정에서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제공해 노사 갈등을 줄이는 게 기업에 이익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임종국 한국경영자총협회 팀장은 "회사를 나간 직원들이 새로운 삶을 성공적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기업에도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직원들의 퇴사 이후 삶을 함께 고민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일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연구소 대표는 "수십 년간 회사 안에만 있다가 다시 사회로 나온 이들이 방황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을 돕는 아웃플레이스먼트가 활성화되면 사회적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전직지원프로그램)

퇴직자·해고자의 재취업이나 창업을 도와주는 종합 컨설팅 서비스다. IMF 직후인 1998년 진출한 DBM코리아가 이듬해 포스코 자회사를 상대로 이 업무를 처음 시작했다. 재무상담, 심리상담을 통해 실직 상황에 대한 적응을 돕고 전문 컨설턴트가 재취업이나 창업·전업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