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사진에 그런 메시지를 담았지 싶다.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무엇으로 보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사람이 '연근'이라 답한다. 사실 그렇게 보인다. 듬성듬성 비워진 모습이 연근을 잘라 놓은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의 피사체는 연근이 아닌 무를 잘라놓은 단면이다. 농부가 수지가 맞지 않아 밭에 그대로 버려두어 한겨울을 지내면서 바람이 든 모습이다. 나는 이 모습을 사진에 담으면서 마치 인생 일 막을 마감하고 인생 이 막을 맞으려는 시니어들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젊음과 청춘을 다 바쳐서 열심히 일하여 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사회와 국가, 가족에게 헌신하고 자신은 앙상하게 남은 것과 같아 보여서다.
자식의 교육이나 결혼자금 또는 자녀 사업자금으로 다 쓰고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여도 취업이 쉽지 않아 취업을 위한 준비금까지 부담해야 한다. 서울 목동 아파트에 살던 지인 한 분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아파트를 팔고 강남의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전세로 이사하였다.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한의사가 됐다. 한의원을 개업해 주기 위하여 전세를 줄여 사업자금을 마련해주었다. 서울 외곽으로 전세를 크게 줄여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처럼 한의원의 사업이 순조롭지 못하였다. 생활비를 대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전세를 줄였다. 물론 본인들이 쓸 돈은 바닥이 난지 오래다.
하는 수 없이 부인은 식당에서 허드렛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등골까지 다 빨린 베이비붐 세대의 현실을 닮았지 싶다. 그래서 이 사진의 제목을 ‘자화상’이라 붙여보았다. 인생 이 막에서는 비워진 그곳에 생업에 밀려 하지 못하였던 꿈의 성취를 채워가야 하지 않을까? 인생 이 막은 자아실현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