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일본 열도는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지만, 핵심은 4개의 큰 섬인데 그 4개 중 가장 작은 섬이 시코쿠이다. 일본을 스무 번 넘게 드나들었어도 어쩐 일인지 시코쿠를 못 가보다가 드디어 다녀온 이야기. 시코쿠는 동양의 산티아고라 할 만큼 순례 길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섬 내 88개의 사찰을 연결하여 한 바퀴 도는 1,200Km 순례 길을 말하는데 이는 다음 편에 알아보기로 하고 먼저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다녀온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도도부현(都道府県), 즉 광역 자치 단체인 도(都, 도쿄 도), 도(道, 홋카이도), 부(府,오사카 부와 교토 부) 그리고 43개의 현(県, 나머지 43개)으로 이루어졌는데 일본열도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는 4개 현이며 그중 가가와현은 면(麵)의 왕국이라 불릴 만큼 우동으로 유명한 곳이며 동양의 산티아고로 불리는 순례 길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섬 전체가 미술관인 '나오시마(直島)'
우리가 우동하면 떠올리는 사누키 우동은 이곳 가가와현이 본고장이며, 가가와의 옛 이름이 '사누키'인 것이다. 가가와현의 인구 40% 이상이 사는 중심도시 '다카마쓰(高松)'는 일본의 지중해로 불리는 세토 내해(內海)와 맞닿은 항구도시로 이곳에서 페리(ferry)를 타면 약 50분(돌아오는 편은 10분 더 소요, 고속선은 약 25분 소요)이 걸려 '나오시마(直島)'에 갈 수 있다.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미술관이며, 세계적 여행전문지 ‘트래블러’에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세계 7대 명소로 꼽아 유명해진 곳으로 원래는 쓰레기더미였던 보잘 것 없던 섬을 교육 관련 기업 베넷세 홀딩스와 후쿠타케 재단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여러 예술가, 그리고 섬 주민들이 협력하여 예술의 성지로 탈바꿈하였으니 순례길보다 먼저 다녀오게 된 까닭이다.
▲다카마쓰 항에서 나오시마로 가는 배를 탄다. 선착장 매표소 모습은 우리나라 항구의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페리호를 타고 50분쯤이며 나오시마 미야노우라 항에 도착한다. 나오시마 섬은 서북단 지역은 산업구역(공장지대)으로 개방하지 않고 있으며, 나머지 부분은 크게 3구역으로 나누어 항구가 위치한 미야노우라 지역과 베넷세 아트사이트 지역, 그리고 혼무라(本村) 지역으로 이루어지는데 무료셔틀버스를 타고 돌아보거나 걸어서, 또는 자전거나 스쿠터를 렌트하여 돌아볼 수 있다.
미야노우라 항 지역은 나오시마 섬을 둘러보고 나올 때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베넷세 아트사이트 지역으로 이동했다. 항구에서부터 걸어서 35분, 자전거로는 15분, 차량으로는 5분 거리에 있는데 먼저 지추 미술관(2004년 건립)을 만나게 된다. 지추(地中)미술관은 글자 그대로 세토 내해를 바라보는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하여 건물 대부분을 지하에 매설한 독특한 구조의 미술관이며 안도 다다오가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는 장소'를 테마로 만든 아트 스페이스이며 입장료는 2,000엔이다.
▲지추미술관 승차장, 편의시설과 기념품점 등이 있고 실제 미술관은 조금 이동하여 지하에 건축하였다. 나오시마 섬의 여러 미술관 내부 작품들은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사진을 게시하지 않는다.
안도 다다오
1941년 출생,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이며 독학으로 건축을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1969년 안도 다다오 건축 연구소를 설립, 일본 건축 학회상을 수상한 이후 프리츠커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슈발리에) 등 세계 주요 건축상을 휩쓰는 한편, 미국의 예일, 콜롬비아, 하버드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도쿄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임 중이다.
지추(地中) 미술관을 한 굽이 돌아가면 우리나라 사람인 이우환 미술관이다. 한국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우환은 안도 다다오와 밀접한 관계와 남모를 교류를 통하여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에 이우환 개인미술관을 오픈해주어 나오시마 섬의 또 다른 명소가 된 곳이다. 이우환은 알타미라 동굴에서 영감을 얻어 삶과 죽음이 결부된 우주적 공간을 표현했다고 하며 자연과 건물, 작품의 3요소가 조용히 조화를 이루며 사색의 시간을 주는 곳이다.
▲이우환 미술관의 외부 모습, 철판과 돌 그리고 당간지주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이 보인다.
이우환 미술관을 지나 해변으로 나오면 베넷세하우스 지역으로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시설이다. 안도 다다오가 전체 설계를 담당하여 유명한 베넷세 호텔은 나오시마 유일의 호텔로 총 4곳(뮤지엄, 오발, 파크, 비치)의 각기 다른 테마로 구성되어 있고 세토 내해를 바라보는 전망 등이 각별하다고 하는데 느긋한 휴식을 위해 초등학생 미만은 받지 않는 곳(뮤지엄, 오발)도 있는 등 특색 있는 곳이지만 객실 수가 많지 않고 요금도 만만치 않아 실제로 한번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넷세 아트 사이트와 정면의 해변 모습, 모노레일로 올라간다는 언덕 위의 오발 호텔에서 한 번쯤 묵고 싶다.
▲해변 잔디밭에 군데군데 놓인 조각 작품들, 도자기 재질로 보인다.
▲베넷세 하우스를 지나니 나오시마 섬에서 유명한 호박이다. 이곳에는 노란 호박이 있고 미야노우라 항에는 빨간 호박이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Pumpkin(호박)'으로 방문객들이 즐거워한다. 마을 곳곳에서 작은 호박들을 볼 수 있다.
베넷세 하우스를 벗어나면 '진달래 별장(쓰쓰지소)'이라고 불리는 숙박시설이 있다. 간단한 식음료도 판다. 몽골식 파오나 오두막집 형식의 다다미방, 캠핑카 트레일러 등 다양한 스타일이 있으며 나오시마에서 가장 바다에 가까운 숙소라고 한다. 그래서 고향 바다의 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계속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 걸어서 약 25분, 자전거로 8분, 차량으로 4분 거리가 혼무라 지역이다. 나오시마초 사무소와 혼무라 항이 있는 어촌 마을이며 '집 프로젝트'라 하여 현주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협업으로 진행한 아트 프로젝트를 말하는데 낡은 가옥들을 보수하고 집 건물 자체를 작품화한 가옥들을 볼 수 있으며 매우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총 7곳이 선정되어 꾸며졌는데 각각을 보려면 140엔이며, 1,030엔이면 전체를 볼 수 있는 공통티켓을 살 수 있다. 또한, 골목골목 다니면서 이집 저집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규슈의 유후인이나 서울의 삼청동, 세종 마을 등등을 연상케 한다.
▲나오시마 혼무라 지역 이모저모. 안도 뮤지엄 대문에 걸린 노랜(조각보)는 각 집안의 전통 가문을 생각해서 디자인한 것이다. 지역 내 집집마다 걸린 노랜(조각보)들은 모두 그런 배경이며, 노랜 프로젝트로 예술가들이 협력한 산물이다.
▲집집마다 창문, 출입문, 담벼락을 아기자기 예쁘게 꾸몄다. 아주 작은 호박모형이 눈에 띈다.
▲문이 열린 민박(民宿)집, 앞마당도 잘 꾸며놓아 관광객들이 좋아한다.
▲현미 삼식을 제공하는 아이스나오, 웰빙 일본식 가정식을 파는 곳이다.
이렇게 베넷세하우스 지역과 혼무라 지역을 돌아보고 처음 배에서 내린 항구, 미야노우라 지역으로 간다. 다시 배를 타고 다카마쓰로 돌아가기 전에 항구지역을 돌아보았다. 사실 배에서 내려 처음 만나는 지역이지만 나중에 보는 것이다. 우선 큰길가에는 자전거와 스쿠터를 빌려주는 곳이 있다. 나오시마를 돌아보기에는 자전거가 제격이다.
▲관광객들에게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주는 가게, 자전거로 일주하면 좋을 듯하다.
▲나오시마섬 또 하나의 명물, 목욕탕 'I ♡ 湯'(아이러브 탕)이다. 실제로 주민들이나 관광객이 사용하는 목욕탕이다. 혼무라 지역 집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가 손을 댄 곳인데 일약 관광명소로 소문이 났다. 510엔을 내면 들어갈 수 있다.
▲항구 넓은 곳에 설치된 구사미 야요이의 '빨간 호박', 베넷세 하우스 옆에 있는 노란 호박과 함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대략 반나절쯤이면 이렇게나마 나오시마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유명한 곳이나 화려한 볼거리에 익숙한 관광객들에게는 다소 의외일 수 있겠지만, 소수의 인원이 시간이나 스케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둘러보고 쉬기도 하고 먹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힐링이 되는 여행, 느낌과 생각의 자유로움으로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주민들 모두가 친절하고 집집이 아기자기하며 예쁜 곳, 음식도 작고 예쁘고 맛있는 곳이다. 할 수만 있다면 섬에서 하루 묵었으면 좋은 곳이다. 예술에 관심이 있고 나름대로 지식이 있어도 좋고 아니어도 괜찮은 곳이다.
내년(2016년)에는 세토 내해의 섬들을 무대로 세계적인 건축가와 아티스트,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2016'을 펼치는데 봄, 여름, 가을로 나누어 몇 개월을 한다고 하니 내년이야말로 시코쿠 가가와현 나오시마를 방문할 기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