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리의 그림' 그릴 겁니다

"때때로 과음으로 결례를 범하는 저에게 변함없이 도타운 정을 나눠주신 분들께 영광을 돌립니다."

5일 서울 정동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 제27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화가 강요배(63)의 수상 소감에 폭소가 터졌다. 인생에도, 작업에도 지름길이라곤 모르는 '직진(直進) 화가'는 이내 농담을 주워 담고 진지해졌다.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늘 고민했습니다. 나는 동양 사람인데 왜 서양화를 그리는 걸까. 길게는 150년 넘게 지속되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물결 속에서 아시아 예술가로서 '나의 그림' '우리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강요배는 1980년대 서울을 기반으로 민중 미술 1세대로 활동하다가 20여 년 전 제주로 귀향해 그곳 자연을 그려온 중견 작가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노마드(유목민) 예술가'가 주목받는 우리 화단의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향 땅에 뿌리내린 '붙박이 작가'다.

이중섭미술상이 제정된 이후 27년 만에 이중섭이 피란 가 안식처로 삼았던 제주 출신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중섭 선생이 서귀포에 도착한 해, 제주도 동쪽의 조그만 마을, 바다와 50m 떨어진 초가에서 어머니 배 안에 들어 있었다"며 이중섭과 제주를 공유한 인연을 꺼냈다. 심사위원단은 "시각적 인상을 넘어 장구한 시간에 대한 상념을 담은 그의 작품은 치열한 작가 정신과 시대를 앞선 조형적 실험을 보여준 이중섭의 예술 세계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강요배란 사람은 거짓말을 못 해요. 강요배 그림도 거짓말을 안 하지요. 대상과 교감 없이는 그리지 않는 강요배의 정직함과 순정이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합니다." 35년 지기(知己)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애정 어린 축사를 건네자, 강요배가 답했다.

"화가는 자기만의 양식과 표현 방식을 통해서만 예술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봅니다. 늘 돌이켜보고 채찍질하지만 쉽지 않은 길입니다. 수상을 격려로 받아들이고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이날 시상식에는 오광수·송미숙·심문섭·김호득·오원배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이상갑·민정기·김영순·김영호·김성원 심사위원, 역대 이중섭미술상 수상 작가인 황용엽·손장섭·김종학씨, 이중섭 조카 손녀 이지연·이지향씨, 유희영 전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학고재 우찬규 대표,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 등 각계 인사 150여 명이 참석했다. 수상 기념 전시 '소리'는 15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다. (02)724-6328, 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