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졸린 서울시 공권력

#1 서울시 주·정차 단속 공무원인 설모(63)씨는 지난 6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오전 10시쯤 강남구 영동대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불법 주차 중인 택시를 단속하고 있었는데 택시가 갑자기 후진을 하면서 차량 앞바퀴로 설씨 발등을 밟고 지나간 것이다.

#2 지난 4월 청량리역 앞 버스정류소에서 흡연 단속을 하던 공무원 문모(여·48)씨는 술 취해 담배를 피우던 50대 남자에게 육두문자가 섞인 항의를 들었다. 그 장면을 본 행인이 '아저씨가 잘못해서 단속받는 것 아니냐'고 편을 들자 남자는 이 행인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남자는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문씨는 꺼림칙해 단속 지역을 바꿔야 했다.

서울시에서 주차 위반이나 택시 승차 거부 등 행정법규 위반 단속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단속에 걸린 사람들이 공무원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폭행을 가하는 건 다반사다. 단속 공무원이 가진 서류를 빼앗아 찢어 버리는 사람, 주차 위반 단속 공무원을 차로 치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 주차 위반 고지서를 발부하고 돌아가는 공무원들의 차 열쇠나 서류 가방 등을 빼앗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가벼운 행정법규 단속 현장에서도 '공권력 무시'가 일상화돼 있는 것이다.

단속 공무원들은 보통 한 사람당 한 달에 10번, 한 번에 6~8시간씩 단속을 나간다. 공무원들은 "5년 전만 해도 한 달에 두 번꼴로 폭언·욕설을 듣는 일이 있었다면, 요즘은 봉변을 당하는 일이 그 두 배로 늘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워낙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욕설을 듣고 멱살을 잡혀도 참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공무원 최모(67)씨는 지난 3월 동대문 지역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승차 거부를 하는 택시의 사진을 찍다가 봉변을 당했다. 택시 기사는 "당신이 뭔데 사진을 찍느냐"며 달려들었다. 최씨는 "저는 서울시 단속 공무원인데 이러시면 공무 집행 방해가 된다"고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그 기사가 "죽여버리겠다"며 주먹을 날리더라는 것이다.

주차 위반 단속 업무를 하는 공무원은 "발레파킹 차량이 많은 강남 일대에선 '어깨' 같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항의하기 때문에 6인 1조로 근무를 한다"며 "원래 2인 1조로 단속을 해야 단속 지역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데 여럿이 뭉쳐 다니다 보니 업무에도 과부하가 걸린다"고 했다.

금연 구역 위반이나 주차 관련 단속을 하는 공무원은 대부분 계약직이다. 55∼65세 장년층과 여성이 많다. 그러다 보니 단속에 걸린 사람들이 이들을 얕잡아 보며 덤벼드는 일이 잦다. 한 공무원은 "얼마 전 과태료 고지서를 작성하는데 단속 대상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찢어버렸다"며 "그래 놓고도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교통경찰에게는 공무 집행을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수갑을 채우는 등 현장에서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행정 단속 업무는 112에 신고해 경찰이 올 때까지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행정공무원들도 공무 집행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제한된 범위라도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질서와 법은 남이 지키는 것이라고 여기는 희박한 법 의식이 큰 문제"라며 "제도 정비만큼이나 '정당한 법 집행에는 순응해야 한다'는 시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