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공무원은 過去에 머물러있다… 교과서대로 하면 무슨 창의성 있나"

이근면(63) 인사혁신처장이 '취임 1년 인터뷰'를 제의해왔다. 정부 고위직은 통상 이처럼 적극적이지 않다. 인사혁신처는 세월호 사건 때 '관피아' 문제가 제기돼 공직 개혁을 위해 만들어졌다.

색깔 있는 안경테에 청색 와이셔츠를 입은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임명되자 삼성(三星) 출신이라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 자리를 맡은 뒤로는 공무원 연수에서 엎드려 잔 여자 교육생을 CCTV로 색출한 걸로만 화제가 됐다.

"색출이라는 말은 과장됐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연수생들에게 공직 가치와 역할에 대해 특강하는 자리였다. 아침 9시부터 130분 동안 진행했는데 그 학생은 시작부터 끝까지 잤다."

―강의 내용과 방식이 뻔하고 재미없어 졸리게 한 것은 아닌가?

"400명이 넘는데 그 교육생이 유독 그랬다. 아침부터 왜 그렇게 대놓고 자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민간 기업이라면 아마 부장급이 강의해도 안 잘 것이다. 여기에 공무원의 문제가 있다. 공무원들이 교육받으러 갈 때 뭐라고 하는 줄 아는가?"

―대략 짐작은 가지만.

"공무원들은 교육을 '쉬러 간다'고들 말한다. 그러니 빠르게 변화하는 바깥세상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공무원 교육훈련법은 1973년 만든 뒤로 그대로다. 내가 이걸 개혁하려고 한다. 국가공무원법은 1963년, 공무원윤리헌장은 1980년 것이다. 공무원 사회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그런 법(法)이 오래됐다고 해서 공무원이 과거에 머물려 있다고 할 수 있나?

"지금 시대 환경에 맞는 공무원상(像)이 없다. 세간에서 공무원 하면 떠오르는 게 철밥통, 복지부동인데…."

―이 처장이 구현하고 싶은 공무원상(像)은 무엇인가?.

"유능하고 따뜻한 집단이다. 국가 경쟁력은 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의 경쟁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과거 공무원 집단은 국가 발전에 기여가 컸다. 앞에서 민간을 끌어왔다. 지금은 그런가? 이대로라면 점점 더 뒤처질 것이다."

―몸담았던 삼성을 이상(理想) 모델로 두고 있나?

"삼성 조직이 따뜻한가? '인화' '또 하나의 가족' 등을 사훈(社訓)으로 내거는 대기업치고 직장 분위기는 그와 정반대라고 하지 않나(웃음). 어쨌든 지금 공무원 집단의 시급한 문제는 낮은 효율과 전문성이다. 우리 사회의 상층부 인적 자원이 높은 시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오는데 왜 이렇게 됐나. 인사(人事)와 교육 시스템이 1970~80년대식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순환 보직 제도가 전문성을 떨어뜨린다고 많이 지적됐는데?

"부처의 국·과장들은 거의 1년마다 자리가 바뀐다. 업무를 파악했다 싶으면 자리를 옮긴다. 복잡하고 다양한 업무를 언제 습득하나. 행정력 낭비가 얼마나 심한가. 이는 김영삼 정권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문제다. 순환 보직을 깨고 전문성을 강화하라고. 하지만 그동안 바뀌지 않았다. 왜 안 됐겠나?"

―한 보직을 계속 맡고 있으면 개인으로서는 승진과 다른 기회를 잃게 되는데.

"바로 그거다. 승진과 보상 제도의 변화 없이는 안 된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소위 '자리값'이라는 게 있다. 어떤 자리를 거쳐야만 승진하게끔 되어 있다. 그걸 깨야 한다(올 들어 중앙부처의 국·과장은 2년, 실무급은 3년이 안 되면 자리 이동을 못 하도록 시행령을 바꿈)."

―현재 공무원 숫자가 109만명이다. 역할에 비해 불필요하게 많다는 얘기가 있다.

"OECD 국가 평균으로 보면 많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공무원들이 뭔가 일을 해야 하니까 규제하거나 간섭할 대상을 찾는다고 한다. 이런 실태에 대해 알고 있나?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법률의 증가와도 관계있다. 15대 국회 때 법률안 발의는 1951건이었다. 19대에서는 2만건이 넘는다. 10배 이상이다. 법률이 늘어날수록 이를 집행하는 공적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게 규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공무원들로서는 법률에 따라 규제와 간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인가?

"공무원들에게 교과서대로 하라고 한다. 여기 와서 일해 보니 실무집·업무프로세스 등 두꺼운 책이 움직인다. 절차와 규정대로 해야 하니까, 어떤 범위 안에서는 공무원들이 유연하게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는 재량도 줘야 한다. 현실에서 이게 막혀 있다. 그랬다 하면 감사(監査)를 받으니. 이런 마당에 공무원들에게 무슨 창의성을 기대하겠나."

―감사 때문에 일 진행이 안 된다는 불만이 많다. 정부 부처에서 진짜 감사 대상은 감사원이라는 말도 있고.

"공무원을 믿지 못하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 공무원들이 모두 '잡초'가 아니다. 이들에게 좀 더 재량과 융통성을 주면 규제가 줄어든다. 믿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잡초는 뽑아야겠지만 잔디는 키워야 한다."

―삼성에 있을 때 겪어본 공무원 이미지는?

"헌신적인 면도 봤지만 어두운 면이 많았다. 조사를 해보면 국민이 공무원에게 첫째로 바라는 게 '청렴'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운 면이 많이 줄었다고 본다(올 들어 공무원이 100만원 이상 받으면 이유가 뭐든 파면하는 걸로 시행령 바꿈)."

―같은 인사 업무이지만, 삼성에서 할 때와 무엇이 달라졌나?

"성과 우선인 기업보다는, 인사 평가에서 공익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개인적으로는 '과연 내 업무의 고객은 누구인가. 공무원인가 국민인가? 공무원이 바라는 인사와 국민이 바라는 인사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가 있다."

―재미있는 얘기다. 고객이 누구인가?

"직무의 성격상 양쪽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국민을 바라보지 않는, 국민의 요구를 모른 체하는 인사는 합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일 수가 없다. 나는 공무원 채용과 교육에서 확 바꾸고 싶다. 이는 회임(懷妊) 기간이 길지만 성공만 하면 공무원들의 의식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공무원 조직에 외부 바람을 넣자며 '공직 개방형' 제도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그 자리도 대부분 공무원으로 채워졌다.

"15년간 그 제도를 시행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개방형 국·과장급에 민간인 출신은 19%밖에 안 된다. 이렇게 적으면 설령 민간 기업에서 재벌 오너가 데려와도 텃세에 버티지 못한다. 자기를 보호해줄 상사들이 없으면 중간에 나가버린다. 전체 국·과장직에 10% 이상 민간 출신이 있어야 바뀐다(현재는 2%). 2017년부터 5급 공무원 신규 채용에서 공개 채용과 경력 채용 비율을 5대5로 맞추려고 한다."

―이 처장의 공직 개혁 첫 작품은 '해외 유학파 영입' 정책이었다. 해외에서 공직 채용 설명회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론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철회를. 지난 10월 미국서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채용 설명회를 열었다. 재외동포는 700만명이고 이 중 유권자가 260만명이다.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다. 국가 발전에 활용해야 한다. 이들에게 공직에 도전할 기회를 알려주는 것은 의무일 수 있다."

―이를 '새로운 음서(蔭敍)제' '또 다른 신분 대물림'이라고 비판하지 않나?

"잘못 알고 있는데, '특채'로 뽑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국내에서 경력직을 뽑는 것과 같은 거다."

―삼성전자가 해온 '우수 유학생 선발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들었다.

"삼성만 아니라 대기업 대부분이 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 정부도 하는 방식이다. 국가대표 감독도 외국인을 영입하는데, 왜 재외국민을 활용하지 않는가."

―공무원 조직에서는 학교와 지역 출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걸 알고 있나?

"민간 입사 지원서에서는 '스펙'을 따지지 말자고 하는데, 공무원 인사 카드에는 출신지·고교·대학까지 적혀 있다. 왜 그런 게 필요한가. 인사 카드의 기입 내용을 바꾸려고 한다. 과거에 어떤 성과를 냈고, 지금 맡은 일을 잘하고 있는지, 다음 보직에서 잘해낼 것인지가 인사 기준이 돼야 하지 않나."

―그래 봐야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어느 학교·지역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한다. 현 정권에서 'TK 독식설'도 그렇고.

"인사를 할 때 정해놓은 평가 절차를 거친다. 그런 정치적 바람을 배제하려고 한다. 'TK 독식설' 같은 얘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실제는 꼭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삼성에서 고위직으로 있을 때 사내(社內) 동문·동향 모임을 금지했다고 들었는데?

"공개적으로 못 하게 했다. 학연·지연 등으로 얽히면 업무나 인사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했던 것처럼 정부에서는 왜 그런 모임을 막지 못하나?

"민간 기업에서처럼 왜 못할까?"

―본인이 정부 안에서 힘이 없어 그런가?

"글쎄,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이라. 바꾸려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정부 전체의 동의가 필요한데…."

―사실 현 정부 인사의 파행(跛行)은 직업 공무원들보다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비서진 임명에서 비롯됐다. 물론 인사혁신처장의 직무에서 벗어난 것이지만.

"이는 대통령께서 포스팅한다. 우리도 후보 대상을 추천은 하지만, 사실 우리 직무는 직업 공무원 인사 관리에 국한된다."

―총선 출마를 위해 장관들이 차례로 나가고 '찔끔 개각'이 계속될 것이다. 장관들 마음이 콩밭에 있는데 밑에서 일을 하겠나. 국민이 이런 인사(人事)를 어떻게 보겠나?

"대통령께서 장관을 오래 쓰겠다는 구상과 정치 현실에서 오는 갭(격차)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공대생(성균관대 화공과 출신)이 어쩌다 인사통이 됐나?

"TV 브라운관의 앞면 유리틀을 만드는 가장 오래된 기술자였다. 삼성의 해외 연수 1호였고. 그런데 내가 사람과 관련된 재능이 있었다. 공장에 적지 않은 종업원이 있었지만 뒷모습만 보고도 모두 이름을 부를 정도였다. 또 회계(會計)를 좋아했다. 그런 능력이 눈에 띄어 인사 업무를 제의받았다. 엔지니어로서 인사 보직은 첫 케이스였다. 그 뒤로 삼성그룹에서 신설되는 회사로만 옮겨가며 인사를 담당했다. 인사혁신처에서 일하는 것도 그런 셈이다. 내 이름에 '힘쓸 면(勉)'이 들어 있어서 지금까지 힘만 써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