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성로 ‘공구박물관’(왼쪽 건물). 방바닥에 다다미가 깔려 있는 1930년대 2층 건물이다.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대구 동산선교사주택에서 진골목까지 약 2㎞의 '근대 문화 골목'은 대구의 근대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는 길이다. 그 길을 걷노라면 시곗바늘이 거꾸로 도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동산 언덕에 오르면 기와지붕을 한 서양식 벽돌집인 스윗즈주택이 보인다. 대구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이루어지던 1910년대 지어진 집이다. 한국인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는 뜻에서 기와를 올렸다. 동산 언덕의 다른 이름은 청라 언덕.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 고(故) 박태준(1900~1986)의 가곡 '동무생각'에는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라는 가사가 있다. 여름이면 푸른 담쟁이넝쿨(청라)이 선교사 주택들의 벽을 휘감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윗쪽 사진) 3·1 만세 운동의 길. (아랫쪽 사진) 선교사 스윗즈 주택.
동산 언덕에 있는 제일교회 신관 남쪽에는 어른 두 명이면 꽉 차는 폭의 계단길이 있다. '3·1 만세운동길'이다. 대구 학생들의 3·1 만세운동을 기리는 곳이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은 3월 8일 오후 대구로 확산했다. 당시 인근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학생들이 이 길을 지나 약속 장소인 큰장(서문시장)에 모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계단길 벽에는 1900년대 초의 대구 모습과 3·1운동 사진들이 붙어 있다.
고개 들어 동쪽을 바라보면 나무 사이 벽돌 건물 위로 솟은 첨탑 한 쌍이 보인다. 계산성당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영남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 100년 넘는 대구 가톨릭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북 지역 가톨릭의 중심지다. 원래 1899년 한옥으로 지어졌지만 건물이 화재로 전소하면서 1902년에 프와넬 신부가 설계한 지금의 건물이 됐다. 우뚝 솟은 한 쌍의 첨탑과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새겨져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했던 성인들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계산성당에서 50m쯤 걸어가면 한옥 건물이 보인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와 민족운동가 서상돈 고택(古宅)이 나란히 서 있다. 이상화 시인은 이 집에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다. 서상돈은 1906년 대한제국정부가 1300만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일본으로부터 빌려 쓰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이를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민족운동가다. 이상화 고택 옆에는 문화체험관 '계산예가'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대한제국시대, 일제시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시기 당시의 영상물을 볼 수 있다. 한약재상이 몰려 있는 350년 전통의 대구 약령시(藥令市)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약령시의 한의학과 한약재를 소개하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옆 골목에는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의 무대였던 한옥이 숨어있다. 김원일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약령시의 끝은 진골목과 닿아있다. '길다'를 '질다'로 발음하는 경상도 말에 따라 '긴골목'이 '진골목'이 됐다고 한다. 진골목 '미도다방', 인근 화교학교 옆 '공감 게스트하우스' 등에는 주민 해설사가 있어 길을 걷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좋다.
대구역 사거리에서 달성공원 교차로까지 약 1㎞ 길이로 늘어서 있는 중구 북성로는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몰려 살았던 곳이다. 일제시대에 대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신작로였기 때문. 당시 북성로는 양복점과 기모노점, 각종 잡화점이 들어서면서 '모토마치(元町)'로 불리던 대구 지역 최대 상권이었다. 이 당시 지어진 일본풍 가옥들이 남아 있다. 현재의 공구 골목은 해방 이후 미군 부대가 들어서면서 공구 상점들이 옮겨와 형성됐다고 한다.
북성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북성로 공구박물관'이다. 1930년대 지어져 미곡 창고로 쓰였던 2층 근대건축물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2층에는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40년대부터 쓰였던 각종 공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탄알통, 멍키스패너, 망치, 각종 볼트와 너트, 일제시대의 나무자루로 된 드라이버도 벽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다. 1층은 공구골목 기술자의 작업 공간을 재현한 전시 공간 '공구상의 방'과 공구를 사용한 공작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하루종일 걷느라 지쳤다면 카페에서 잠시 쉬어간다. 북성로 '카페 삼덕상회'는 1930년대 지어진 건물을 수리해 2011년 개장했다. 철사와 로프를 비롯한 공구 자재를 팔았던 가게가 카페로 탈바꿈했다. 처마에서 꺾여 나오는 연통이 정취를 더한다.
가는 길(서울 기준): 서울에서 KTX 승차→동대구역 하차→대구지하철로 갈아타고 중앙로역 하차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대구 '근대로의 길'▲추천코스(하루 코스): 대구 진골목→약령시 한의학박물관→이상화 고택→계산예가→서상돈 고택→계산성당→3·1 만세운동길→선교사 블레어 저택→북성로 공구박물관
먹을거리 상주식당, 배추가 듬뿍 들어간 경상도식 추어탕을 낸다. (053)425-5924, 배추 수급이 어려운 12월 중순부터 3월까지는 쉰다. 카페 삼덕상회, 컵 테두리를 초콜릿 시럽으로 꾸민 '삼덕's 카푸치노'가 유명하다. (053)427-3332, 명절에는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