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공모株 외면한다는데…

기업공개(IPO)에 나선 업체들이 주식 공모를 앞두고 실시하는 기관투자자 수요 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업체는 기관 수요 예측 경쟁률이 미달해 상장을 미루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증권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주식시장 침체로 신규 상장사들의 주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기관투자자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이미 상장한 회사 중 상당수가 공모가를 밑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 기관이 이를 팔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다는 점도 기관 수요 예측의 흥행 실패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차이나크리스탈, 기관투자자 외면에 상장 연기

중국 합성 광물 생산 업체 차이나크리스탈신소재홀딩스는 지난 17~18일 진행된 기관 수요 예측 결과 0.3대1의 저조한 경쟁률이 나타나자 상장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해 공모가가 회사에서 생각하는 희망 공모가에 크게 못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차이나크리스탈은 다음 달 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기관투자자의 경쟁률이 맞을 경우 많은 투자자가 희망 공모가 범위의 하단에 가까운 가격을 제시하므로 공모가가 대체로 낮게 결정된다.

세진중공업도 지난 12~13일 진행된 기관 수요 예측에서 8.9대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모가는 희망 공모가 범위(3500~3900원)의 하단인 3500원으로 결정됐다. 반도체 장비 업체 엑시콘은 28.3대1의 낮은 경쟁률로 기관 수요 예측을 마감했다. 엑시콘의 공모가는 희망 공모가 범위(1만3500~1만6500원)에 못 미치는 1만원으로 정해졌다.

항공기 부품 제조사 하이즈항공은 기관 수요 예측 경쟁률이 47.3대1로 엑시콘보다 높았으나 공모가는 1만8000원에 그치며 희망 공모가 범위(2만3000~2만6000원)의 하단에 크게 못 미쳤다.

◇주식시장 침체로 투자 심리 약화

증권 업계는 현재 주식시장이 침체돼 공모주에 대한 기관의 투자 심리가 약해졌다고 분석한다. 상장 후 주가 흐름이 부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상장한 업체 중 상당수가 공모가를 한참 밑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반도체 자동화 검사 장비 업체 제너셈은 23일 주가가 5350원을 기록했다. 이는 공모가(1만500원)보다 49.1% 낮은 가격이다. 공모가 3만원으로 상장한 의료 소재 기업 유앤아이의 주가는 2만2400원까지 내린 상태다. 네오오토와 리드의 주가는 공모가보다 22% 이상 낮다.증시 전문가들은 상장을 앞둔 기업이 제시하는 희망 공모가가 기업 가치에 비해 높은 경우가 많아 투자 심리가 더 위축된다고 말한다. 하이자산운용 관계자는 "새로 상장하는 업체들은 동종 업계 회사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을 토대로 희망 공모가를 책정하는데, 일부 바이오 업체는 주가수익비율 50~60배를 적용해 기업 가치보다 주가 수준이 상당히 높다"며 "미국 기준 금리 인상 등으로 주식시장이 좋지 않은 요즘에는 이런 주식에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공모가 밑도는 신규 상장 기업 주가도 문제

새로 상장한 회사들의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해당 주식을 산 기관투자가들이 팔지 못하고 묶여 있다는 점도 기관 수요 예측 흥행이 부진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등 기관 투자자들은 여러 공모주에 대한 투자 비율을 적정하게 유지해야 하지만, 앞서 매입한 공모주의 주가가 하락한 경우가 많아 이를 팔지 못하고 발이 묶여 있는 기관들이 많다"고 말했다.

기관 수요 예측 흥행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규 상장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 두 달 동안 공모주 청약을 앞두고 기관 수요 예측을 한 업체는 총 25개사다. 다음 달 중 수요 예측을 하기로 하고 날짜를 확정한 회사도 25개에 달한다. 기승준 미래에셋증권 기업금융본부장은 "올해는 신규 상장사 수가 많아 공모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자 수요 예측

상장을 앞둔 회사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주 수요 조사를 하는 것. 회사가 희망하는 공모가 범위를 제시하면, 기관투자자는 매입 희망 가격과 주식 수량을 적어 낸다. 회사는 기관투자자가 써 낸 가격과 수량을 가중 평균해 공모가를 확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