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말·오리 토기… 死者의 영혼을 달랬네

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아간다고 믿었다. 망자의 무덤에 넣은 상형 토기를 보면 그 간절한 마음이 읽힌다. 나룻배 모양의 토기, 말이나 오리 모양의 토기, 곡물 창고 같은 집 모양의 토기…. 흙으로 오밀조밀 토기를 빚으며 죽은 이가 저세상에서도 편안한 삶을 누리기를 바랐다.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 신사분관 제1전시실에 갖가지 삼국시대 토기들이 모였다. 모양마다 상징이 있다. 말이나 수레, 배 등 운송 수단 형태를 지닌 토기는 사자(死者)의 영혼을 내세로 편히 옮겨달라는 의미가 있고, 오리를 비롯한 새 모양 토기는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염원이 담겼다. 집 모양 토기는 내세에서처럼 편안하고 넉넉하게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호림박물관이 소장품 1만5000여 점 중 대표 명품 100여 점을 추린 상설전 '호림 명품 100선'을 열고 있다. 그동안 특정 장르로 기획전을 열어온 신사분관이 컬렉션 전모를 한자리에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이장훈 학예연구사는 "소장품 전모를 한 번에 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서 명품 위주로 상설전을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전시품을 부분 교체한다.

국보 3점, 보물 19점을 비롯해 호림의 명품이 총출동했다. 주제는 크게 3가지. 제1전시실에서는 '상형토기-흙으로 빚은 바람', 제2전시실에서는 '불교미술-마음으로 빚은 바람', 제3전시실에선 '명품 도자' 섹션이 펼쳐진다. 호림 소장품 중엔 도자기와 불교미술품이 유명하다. 하지만 뜻밖에 제1전시실의 소박한 토기들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기마인물 모양 토기로 시작해 수레바퀴, 짚신 등 진기한 모양의 토기에서 5세기 삼국시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불교미술 섹션에선 6세기 '금동탄생불 입상'(보물 제808호)이 관람객을 맞는다. 석가모니가 탄생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했다는 경전의 내용을 형상화한 것이다. 연꽃받침대 아래에 경상(經床) 형태의 받침이 더 달린 유일한 예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정병과 함께 전시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화려한 장식의 '금동대세지보살좌상'(보물 제1047호)은 놓치지 말아야 할 대표 명품. 마지막 제3전시실의 도자 섹션에서도 15세기 조선 '백자주자'(국보 제281호), 뚜껑까지 완벽하게 남아 있는 '청자표형주자'(보물 제1540호) 등 눈요깃거리가 풍성하다.

박물관은 또 올해 새로 생긴 기획전시실에서 기획전 '해주요와 회령요의 재발견'을 내년 2월 27일까지 연다. 근대기에 황해도 해주군과 함경북도 회령군 일대에서 제작된 도기들을 출품했다. 투박하지만 현대적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도자기들을 만날 수 있다. (02)541-35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