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을 명(明), 마음 심(心). 법명을 닮은 이름에 묘한 울림이 있다. 육명심 작가의 사진은 세상을 바라보는 등불처럼 환한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민(白民)>, <장승>, <검은모살뜸>, 그리고 <예술가의 초상> 연작에서 그는 단순한 리얼리티에 대한 자각을 넘어 작가가 느끼는 삶의 비애가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다. 앞섶이 흐트러진 채 고랑에 앉아 쉬고 있는 시골 아낙네의 고단한 일상이, 담배를 문 채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년의 장돌뱅이가, 금방이라도 카메라를 낚아챌 듯 매서운 눈으로 작가를 노려보는 예술가의 강퍅한 성정이 감상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좁힌다.
▲<백민>. 전북 고창군. Gochang-gun, Jeollabuk-do. 1979.
1933년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서른셋의 나이에 처음 카메라를 다루기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사진과 관련한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당대의 사진작가들을 찾아가 기술을 배워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석 달 만에 그만뒀다. 그러곤 외국어로 된 사진서적을 닥치는 대로 모아서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세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 사진사를 정리하고 해외 유명 사진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리얼리즘 사진 일색이던 한국 사진계에 신선한 자극을 전파했다.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강사로 부임해서는 자신의 사진철학을 학생들에게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80년대 한국 사진계에 비로소 현대사진이라 일컬을 만한 다양성의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도 그의 교육이 맺은 값진 결과다.
육명심 작가의 작품세계가 다른 작가들과 확연히 차이가 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예술, 특히 문학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왕성한 관심을 꼽는다. 당시 동료들 사이에서 ‘시인보다 더 많은 시를 읽는 사진작가’라고 불릴 정도로 문학에 대한 애정이 두터웠다. 그의 이런 성향은 대표작인 <예술가의 초상>에서 시인 서정주, 천상병, 박두진, 영화감독 김기영, 소설가 박완서, 화가 장욱진 등을 촬영할 때 그들의 얼굴뿐 아니라 작품세계와 지나온 삶까지 뷰파인더에 담는 데 더없이 큰 자양분이 됐다. 또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은 <백민(白民)>, <장승> 연작에서 큰 빛을 발했다. <백민>에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의 질곡과 위대함을 동시에 증명한 사람들의 소박하고 담백한 정신을, 7년간 전국을 떠돌며 촬영한 <장승>에서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만의 정체성을 담았다.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_사진 : 육명심展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로 만나는 육명심 작가는 한국사진 1세대 작가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는 한편 사진이론가이자 교육자로서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사진계를 풍성하게 성장시키는 데 이바지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큰 흐름이 되는 5개의 시리즈 중에서 대표작들을 선보인다. 독특한 구도와 조형성을 강조한 <초기 사진>, 사라져가는 장승과 기층민들의 삶을 기록한 <장승>, <백민> 연작, 문인을 중심으로 예술가의 이미지를 담은 <예술가의 초상> 연작, 제주도에서 행해지던 검은 모래찜질 풍습을 통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미지를 드러낸 <검은모살뜸> 연작 등 작가가 60여 년에 걸쳐 작업해온 총 5개의 작품 시리즈 전체를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뜻깊은 전시다.
12월 11일부터 내년 6월 5일까지, 관람료 2000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6전시실 및 3층 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