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으로 말하는 배우, 조재현

  • 글=황정원 시니어조선 편집장
  • 사진=양수열 C. 영상미디어
  • 동영상=임정환PD
  • Styling=조가희

입력 : 2015.11.30 09:59

조재현은 한결같으면서도 변화무쌍하다. 주류와 비주류,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이제는 믿고 보는 국민배우가 된 조재현의 50 즈음 이야기.

마음의 창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눈빛 때문일까. 영화 <악어>, <나쁜 남자>를 비롯해 드라마 <피아노>, <정도전>, <펀치>까지. 배우 조재현의 필모그래피에는 시종일관 카리스마가 넘친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 밖에서 만난다면 쉽게 다가서거나 똑바로 응시하기 힘들 듯한 캐릭터다. 그런 그가 최근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서 진솔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섰다. 가족들과 함께한 일상 속에서 무뚝뚝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아빠 조재현의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버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에 때로는 응원하고, 때로는 안도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드라마에서 연극, 영화, 예능을 아우르며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조재현. 최근에는 연극열전 프로듀서, 수현재씨어터 대표,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대학교수,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맡으며 연기 외적인 곳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겨울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오후, 조재현을 만나 그의 50+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DMZ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경기영상위원회를 하면서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고사했다. 급작스럽게 영화제를 준비하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로 인연을 맺은 김동호·이영관 집행위원장님께 상의를 드렸더니 ‘정말 매력적인 영화제가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 내가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두 분이 첫 회는 BIFF에서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BIFF의 많은 스태프의 노하우를 전수받아서 진행할 수 있었다.

영화제를 계기로 평화누리길 홍보대사까지 같이 하게 된 건가?

그렇다. 경기관광공사와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하면서 1회 때 특별행사 중 하나로 ‘DMZ평화자전거행진’을 진행했다. 그 전까지는 경기관광공사에서 계속 시도를 했지만 여의치 않았는데 영화제를 하면서 함께 이뤄낸된 것이 자전거길이었다. 1사단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것이 컸다. 평화누리길 걷기대회는 작년부터 시행된 걸로 알고 있는데 관광공사 측에서 이 행사를 좀 더 활성화시켜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나 역시도 걷는 걸 좋아하고, DMZ 부근을 걷는다는 건 의미도 있고, 우리 영화제의 취지와도 맞아서 선뜻 홍보대사로 나서게 되었다.

배우생활을 하면서 필모그래피가 많이 쌓였다. 연기나 장르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한 적이 있는지?

전에는 어쩌면 연기자로서의 나만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돋보이는가?’ ‘이 작품을 하는게 나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편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얼마나 올라갈까?’ 하는 걸 따졌다. 지금은 그 외의 부분에 의미를 두게 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뿐 아니라 비추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그 역시 연기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연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 연극 <에쿠우스>를 연출하고 최근에는 BIFF에서 직접 감독한 장편 영화 <나 홀로 휴가>를 선보였는데.

‘배우를 했으니 연출을 해봐야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에쿠우스>는 내가 워낙 좋아했고 나와 연관성도 많은 작품이었기에 ‘이 작품을 내 방식대로 한번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 홀로 휴가>는 감독을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가장 좋은 툴이 마침 영화였을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도 쓸 수 있고, 그림으로도 그릴 수 있고, 사진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영화만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없겠다 싶어서 한 거다.

중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누가 나한테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이다.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러려고 감독을 한 것도 아니다. 작지만 내가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느끼고 내가 경험하고 내가 고민하는 내 나이에 맞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해온 작품을 보면 주류와 비주류, 주연과 조연을 계속 교차했다. 따로 뜻한 바가 있었던 건가?

장르와 매체마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 어느 한쪽에 치중하고 거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것을 느껴보고 출연해보는 게 매력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에는 독립영화, 작가주의 영화,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영화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 성향과 잘 맞는 것 같다. 남들은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하는데 나는 한시도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영화들이 꽤 있다. 전수일 감독(<파리의 한국남자>,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연출)과도 세 번 작업을 했는데 많은 사람이 ‘어렵다’ ‘지루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표현을 하곤 했다. 나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지루하다거나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느껴지는 것들이 좋았다.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어떤 장면이 나오면 그 이야기를 틀에 맞춰서 이해하려는 버릇이 있다. ‘아, 이 얘기가 이렇고 저래서 그랬다는 거지? 응, 알았어’ 하고 마음속에 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영화를 보면서 ‘아 저런 느낌이구나. 저건 감독이 뭘 이야기하려는 걸까’ 하고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그런 게 내 취향과 맞아서 작가주의 영화를 많이 작업했던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이 이번에 영화를 만들 때 영향을 주기도 했나?

좋아하는 것과 직접 하는 건 다르다. 그런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그렇게 연출할 능력은 없다. 보는 사람은 모호할지라도 만드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철학이 확고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없다. 내가 만든 건 모호하지 않다. 이야깃거리가 선명하고 단순하다. 지루하지 않고 재밌고.(웃음)

연기자로서 늦게 핀 케이스인데, 앞으로도 주연을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본 적 있나?

주연이냐 조연이냐에 대한 것은 마음을 비운 지 꽤 오래됐다. 조연이라도 존재감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분량이나 비중이 아니라. 이 인물이 작품 전체의 흐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느냐, 그 부분이 내게는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역할마다 캐릭터가 분명하다. 전혀 다른 역인데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다.

사람들이 내게서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최근에는 예능을 해서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나를 말랑말랑하게 보지는 않는다.

<아빠를 부탁해>를 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다면?

누차 이야기했지만 예능 출연은 내게도, 딸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딸이 엄마한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만한 아빠와의 추억이 없다고 말했다는 걸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마음이 허전하더라.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인간 조재현과 조혜정의 관계는 무척 좋아졌다. 그리고 출연 당시뿐 아니라 앞으로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전에는 ‘아빠는 바쁘니까 대신에 이 다음에 몰아서 잘해줄게’ ‘나중에 사랑해주면 되지 뭐’ 하고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이 바뀌었다. 물질적인 지원이나 집중적인 시간이 아닌 지속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를 키울 때 한번 물을 왕창 준다고 나무가 크는 것이 아닌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나무를 돌보지 못했다. 수시로 들여다보고 물을 줘야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가족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편으로서의 조재현은 어떤 편인지?

방학 때 빼고는 매주 부산에 강의를 가는데 대부분 아내와 동행한다. 처음 경성대에 강의를 나갈 때부터 여행 다녀오는 기분으로 함께하고 있다. 아내와 대학시절에 연애했던 곳도 부산이고 아내의 고향도 부산이라 친근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막연히 언젠가는 그렇게 해야겠다고만 생각했었다.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연기를 더 많이 하다가 좀 더 후에 천천히 해야지’ 했었다. 처음에는 성신여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모교에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줬으면 좋겠다며 계속 요청이 왔다. 한동안은 거리가 멀어서 고민했다. 성신여대는 우리 집에서 7km고 경성대는 420km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고생하면 되는데, 하고 생각하니 못할 것도 없더라. 지금은 굉장히 만족하고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많이 배려해주셔서 연기 생활과 무리 없이 병행하고 있다.

12월 11일부터 공연되는 <에쿠우스>에 다시 출연한다고 들었다.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번에는 연출하지 않고 출연만 한다. 연출은 극단실험극장의 이한승 대표가 맡았다. 내가 17살 알런 역을 처음 한 게 27살 때였고, 40살에 또 한 번 했고, 44살에 연출을 하면서 의사 역할을 동시에 했다. 그때 사실은 연출하면서 동시에 출연도 하려니까 정작 연기 연습을 많이 못했다. 당시 송승환 형이랑 더블 캐스팅이었는데 송승환 씨 위주로 연습을 하다보니 내 연습은 못하게 되더라. 그래서 내가 했던 다이사트의 연기는 완성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 그 역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출연만 하기 때문에 의사 역에 좀 더 깊게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한승 대표의 연출은 어떤 특징이 있나?

그는 배우 출신 연출가다.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연출이나 배우가 바뀔 때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에쿠우스>를 봤다. 그 정도로 그 연극을 좋아했고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나보다 더한 사람이 이한승 대표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에쿠우스>를 봤고 더 많은 연출자와 연기자들이 만들어놓은 <에쿠우스>를 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한승 대표가 만든 <에쿠우스>는 그간의 모든 장점들이 모아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연출이 특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명작의 경우 연출을 많이 가미할수록 원래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과 멀어질 수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한승 대표가 연출하는 <에쿠우스>는 장점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50대가 되니 어떤 기분인가?

오히려 편안하다. 마흔이 됐을 때는 혼란스러웠다. 30대까지는 청년이었는데 40대가 되는 순간 갑자기 아저씨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50대로는 편안하게 이동됐다. 머리에 숱이 좀 없다는 게 차이일 뿐. 요즘의 50대가 예전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점도 한몫한 것 같다.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본 적 있나?

내게는 죽는 게 은퇴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 중에 아직 못 이룬 것은?

장기간 동안 정처없이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어떤 나라의 어떤 고장으로 갔다가 마음에 들면 두 달 정도 있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일주일 만에 철수하면서. 2년이고 3년이고 그렇게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근데 못할 것 같다. 다음 생에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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