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26 17:54

“엄마! 고맙습니다.”

“뜬금없이 고맙다니?”

“영화를 보았어요. 춘희막이. 그런데 참 아프게 사는 사람들이 많네요. 저를 행복하게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속에 딸이 등장하는데 마음이 매우 아플 거 같아요.”

“그 영화! 엄마도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영화예매였다. 딸아이가 말하는 영화 ‘춘희막이’의 포스터를 지하철에서 오가면서 눈여겨보았다. 춘희는 사람 이름 같은데 막이는 무언지가 의문으로 계속 궁금했는데 딸아이의 안내로 보게 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시니어 에세이] 영화 <춘희막이>를 보고…

한 남편의 두 부인인 춘희와 막이는 어찌 보면 자매 같기도 하고 모녀 같기도 한 기이한 인연으로 만나서 남편이 떠난 후 서로 의지하고 보살피면서 살아가고 있다. 함께 살아온 세월의 시간 속에 애증의 관계는 흘러가고 그동안에 쌓인 끈끈한 정이 두 사람의 인연을 엮고 있었다.

여장부 같으나 속정 깊은 막이 할머니는 먹을 것 아껴서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 자신의 사후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춘희 할머니를 양로원이라도 보내서 살아갈 방법을 만들어주기 위한 저축이다. 춘희 할머니는 이곳으로 올 때 친정어머니가 했던 부탁을 지키느라 돈에 관심이 없다.

돈을 알면 안 된다는 게 남의 집 작은댁으로 가는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의 첩실이라는 듣기도 거북한 단어에 남겨진 욕심과 욕망과 질투로 뭉쳐진 일반적인 관행의 모습이 아닌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삶의 모습으로 남겨지는 안타까움이 영화 속에는 가득하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응어리진 삶의 한가운데 일제강점기와 6·25가 자리하고 있다. 피폐해진 삶의 어느 그늘 속에서 웅크리고 숨죽이면서 살아가야 하는 욕심 없는 모습들이다. 춘희 할머니가 큰댁 막이 할머니가 원하는 자식을 낳기 위하여 씨받이로 들어온 집의 모습은 흔히 첩실들이 살아가는 고대광실이 아니고 나에게 살라 하면 일주일도 살아내기 어려울 것 같은 허름한 농가이다.

그곳에서 평생을 막이 할머니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하여 돈을 배우지 않고 살아온 춘희 할머니의 표정은 영락없는 6살의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의 표정을 지니고 있다. 홍역과 태풍으로 두 아들을 잃은 큰댁 막이 할머니가 대를 잇기 위하여 작은댁 춘희 할머니를 집안으로 들이고 남편이 떠난 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면서 46년간 함께 살고 있다. 한 남편의 두 아내가 아닌 평생을 함께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살아온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으로 묶여 있는 두 할머니의 삶의 모습이 가슴 찡하게 마음에 남는 영화였다.

귀갓길 건대 교정을 건너서 걸어오는 길에 문에 뜨이는 노란 풀꽃들이 한 생을 살아가는 두 할머니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서글퍼서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들꽃의 모습이 되어간다. 세상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모습으로 소박한 삶의 들판을 이루어내는 들꽃의 마음을 두 할머니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이지만 함께 한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가는 따스한 온기로 인연을 엮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생을 끝내는 마지막 시간에 어떤 말로 이별의 말을 나눌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춘희 할머니가 딸네 집에 간 막이 할머니를 기다리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할매 보고프다. 할매~~~”

춘희 할머니의 표정은 말간 하늘을 닮아 있었다. 애증과 사랑이 교차하였을 두 사람의 인연이 만들어가는 가슴 아프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겨지는 따스함이 애틋하게 남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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