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떨어지는데… 한국 경제 왜 신음하나

정부는 올 초 "국제 유가(油價) 하락은 우리 경제에 큰 호재(好材)"라고 밝혔습니다. 개인은 가처분소득과 소비가 늘고 기업은 생산비를 절감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저유가는 축복'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연초 4%에서 현재 2.5%로 내려앉았고 3분기 기준 가구당 소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습니다. 평균소비성향도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습니다. 기업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국내 조선·기계·건설 기업 중 일부는 부도 우려까지 나옵니다. 기대와 정반대로 저유가로 인해 공포가 커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요.

◇'글로벌 공포'된 저유가 현상

기본적으로 저유가에 대한 오해가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저유가의 영향을 '원재료 가격이 낮아진다'는 1차원적인 시각에서만 해석하려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유가와 매출액이 연동되는 산업은 저유가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이익이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어찌 될까요. 기업은 이익이 줄어 비용 감축을 해야 하고, 이는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 감소와 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도 소비를 줄이면서 기업 이익이 줄고, 이는 다시 소비산업 침체와 투자 감소로 직결됩니다. 많은 근로자의 소득이 줄어들 위험에 빠져 있는데, 고작 주유소 휘발유 값 조금 떨어진다는 것을 '축복'으로 평가하는 것이 애초부터 난센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가 영향이 큰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 의존도가 높습니다. 즉 저유가로 인해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과거 한국을 대표했던 조선·기계·건설 기업 중 일부는 아슬아슬한 상황이고, 이 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남의 지역 경제 위기론까지 불거져 나오는 실정입니다.

저유가는 세계경제도 침체로 몰고 갈 수 있을 만큼 무서운 파급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원 수익 의존도가 높은 대다수 신흥 개발도상국가, 특히 석유 기업의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겠죠.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입니다. 브라질 정부는 고유가 시대가 영원할 것이라고 오판한 나머지 국영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새로 발견한 심해(深海) 유전에 과도하게 국가 재정을 의지했고, 그 후유증으로 현재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경제 규모는 세계 8위입니다. 브라질이 흔들리면 세계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석유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중동 국가들이 있습니다. 국영 석유 회사인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와 태국 PTT는 2014년 기준 매출액이 해당 국가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2%, 24%로 높았습니다. 이들의 경영 실적이 크게 흔들리면 충격은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칩니다. 경제 규모로 세계 40위권에 불과한 그리스 사태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나라들의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는 '오일의 공포'가 현실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일 메이저들의 과잉 투자가 저유가 촉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단합니다. 유가 100달러 시대가 다시 오면 됩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기대는 접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우리 앞에는 향후 10년 이상 장기 저유가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유가 시대에 투자를 급격하게 늘린 석유 기업들 때문입니다. 이른바 '5대 오일메이저'로 불리는 기업들(엑손모빌·셰브런·셸·BP·토털)의 2014년 투자 비율은 1985년 이후 30년 만에 최대치였습니다. 개발도상국의 국영 석유 기업도 투자를 크게 늘렸습니다. 브라질 페트로브라스 등 신흥 오일 메이저의 투자 비율은 기존 오일 메이저를 두 배 정도 뛰어넘을 만큼 과다했습니다. 이렇게 공급이 쏟아지다 보니 유가가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1985~2000년까지 15년간 국제 유가는 배럴당 평균 20달러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때만큼이나 오랫동안 저유가 시대를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지요.

◇셰일가스 개발 및 미·중의 석유 소비 감소

수요도 문제입니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을 통해 '탈(脫)석유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즉 석유 소비는 줄이고 가스 소비를 늘리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내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와 가스의 격차는 역대 최소입니다. 이유는 가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죠. 지금 미국의 가스 가격인 '헨리허브'는 mmbtu(가스의 부피 단위)당 2달러 전후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석유로 환산하면 배럴당 13달러 수준입니다. 한때 배럴당 130달러를 호가했던 석유 가격 대비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중국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를 대규모로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 정부는 에너지 소비를 가스 중심으로 하겠다고 수차례 발표했습니다.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 가스 소비를 늘리고 있기 때문에 세계 경기 회복 여부에 관계없이 석유 소비 감소는 필연적인 구조입니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드는 현재 구조가 저유가의 근본 원인인 셈입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도 '언젠가는 반등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중앙아시아와 미국으로부터 저렴한 가스를 유입하기 위한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하고, 기업은 기술·소비산업 육성에 하루빨리 나서야 합니다. 중후장대 산업들은 저유가에 영향받지 않는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하루빨리 대응하지 않는다면 자연 도태되는 낭패를 볼지도 모릅니다.

[시사용어] 셰일가스(shale gas)

진흙이 쌓여 형성된 지하 암반(岩盤)에서 추출되는 가스를 말한다. 1800년대부터 매장 사실이 알려졌으나 1990년 무렵 ‘수평 시추, 수압 파쇄(fracking)’ 같은 신기술이 개발되면서 채굴이 가능해졌다.2005년쯤부터 미국에서 본격 생산이 시작됐다. 2008년부터는 ‘셰일오일’(shale oil)도 생산된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은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는 가스와 원유의 절반 정도를 각각 차지한다.
이로 인해 미국 내 휘발유와 가스 가격을 낮춤으로써 제조 생산비 절감과 소비 촉진을 유발한다. 이른바 ‘셰일 혁명’이다.

셰일가스의 미국 내 주 생산 지역은 텍사스주와 콜로라도, 와이오밍, 유타, 펜실베이니아, 노스다코타주 등이다.

셰일가스와 석유는 전통적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가스보다 황(黃) 함량이 적고 가볍다. 세계적으로 셰일가스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지만 매장량 기준으로는 중국이 1위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중국의 매장량(36조㎥)은 미국(24조㎥)보다 50% 정도 많다.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인 페트로차이나, 시노펙, 중국해양석유총공사, 옌창석유 등 4개 업체에 광산 탐사권을 부여해 셰일가스를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