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전시된 'T'자 모양 하수도관은 이 청동기 문명인들의 생활수준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동물 뼈로 만든 비녀를 머리에 꽂았고,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든 납작한 토기를 손에 들고 몸의 때를 밀었다. 가이드 류싼(劉散)씨는 "당시 이곳은 지금의 윈난성과 비슷한 온화한 기후였다"고 했다. 황허도 그때는 맑았을지 모르겠다.
21세기 우리가 쓰는 것과 별다를 바 없는 유물을 보다가 이들이 전쟁에 이기면 적의 머리를 잘라 '정(鼎)'이란 화로에 넣고 제사를 지냈던 고대인이란 사실을 깜빡 잊을 뻔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으로 상나라의 한 임금이 어머니 제사를 지낼 때 썼다는 무게 883㎏의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이 이곳에서 출토됐다. 박물관에는 적장의 머리가 담긴 채 발견된 정, 청동 화살촉이 선명하게 꽂혀 있는 병사의 해골, 귀족의 무덤을 지키려 창과 방패를 들고 순장된 병사의 전신 유골 등 그 시대 삶의 흔적을 간직한 죽음들로 가득했다. 36세에 생을 마감한 여장군이자 왕비였던 푸하오(婦好)의 묘는 갑골문으로 주인이 확인됐다. 거울과 술잔, 칼에는 그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망자의 유골은 없고, 몸을 치장했던 염료가 스며 붉어진 흙만 남아 있었다. 그녀가 이름을 남긴 것은 전적으로 문자 덕분이었다.
기록이 없다고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은허를 떠나 정저우로 들어오는 길 황허 변에는 106m 높이의 큰 바위 얼굴이 보인다. 염제(炎帝)·황제(黃帝)의 조각상이다. 바위산 아래 광장에는 대형 정 수십 개가 놓여 아예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옆에는 황제를 알현하는 모습의 신하상 수십 개가 도열했다. 일찍이 태평성대를 열었다고 하는 전설 속 황제들. 사마천은 전설이라고 하여 이들을 '사기(史記)'에서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염제는 불을 잘 다스렸고, 황제는 농사를 가르쳤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스스로를 염황(炎黃)의 자손이라 여긴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한 관광객은 "올 때마다 염제·황제에게 인사하는 신하들의 조각상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인근 덩펑(登封)의 도교 사당 중악묘, 소림사 뒤편 쑹산(嵩山)의 삼황채에도 이들을 모신 사당이 번성하다. 이곳은 중국이 시작된 곳, 허난이다.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는 월~토요일에 정저우로 가는 직항 편이 있다. 대한항공과 남방항공 항공기가 번갈아가며 두 도시를 오간다. 대한항공은 주로 오전에 떠나 오후에 귀항객을 태우고 돌아온다.
허난(河南)에선 회면을 꼭 맛볼 것을 권한다. 이곳 사람들은 쌀밥을 먹으면 배가 쉬 꺼진다며 굳이 면 요리를 먹는다. 동행했던 한족 운전기사 역시 쌀밥은 꺼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즐겨 먹는 것이 회면. 다양한 고기와 야채를 함께 끓인 국물이 일품인 면 요리다. 원래는 회족(중국인들이 이슬람 신자를 일컫는 말) 음식이다. 당 태종이 황제에 오르기 전 피란길에 인근 회족 농가에 머물렀는데, 당시 농가에서 기르던 귀한 사슴을 푹 고아 만든 면 요리를 맛봤다. 왕위에 오른 뒤 이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해 조리법을 알아내 즐겨 먹었다고 한다. 처음엔 궁중 음식이다가 이후 민간으로 퍼져 나갔다. 요즘은 시내에서 회면 전문 대형 프랜차이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허난성 관광국 홈페이지(henan.co.kr)에서도 다양한 음식·여행·교통 정보를 한국어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