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희망과 아름다움 전해요

"요즘 시집이 잘 팔리지 않아서 시인들이 가난하지 않나요?"

한 여고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미당 서정주의 제자인 시인협회장 문정희(68) 시인이 답했다. "사실 '시인의 빈곤'도 문제지만, 시를 읽지 않아 생기는 '언어의 빈곤'이 더 걱정이에요. TV를 켜면 음식을 요리하고 먹는 프로그램으로 넘쳐나요. 수십, 수백 가지 음식이 등장하지만 출연자들이 맛을 표현하는 건 '담백하다'거나 '맛있다'는 말뿐이에요. 언어로 다양한 맛을 묘사하질 못하는 거죠. 일상에서 쓰는 한국어의 '격(格)'이 높아지지 않는데 노벨문학상을 기대할 순 없죠."

충남 아산에 첫눈이 내린 지난달 26일, 수북이 쌓인 눈을 헤치고 주민 500여 명이 시청 강당을 메웠다. 무대에 오른 연극배우 4명이 대사를 주고받듯 문정희 시인의 시를 한 구절씩 낭송했다. 관객들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후략)" (문정희 '남편')

문정희 시인의 시 18편을 엮어 연극 형식으로 낭독한 시극(詩劇)이 끝나자 문 시인이 등장했다. "문학과 시가 대단히 어렵거나 멀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왔어요. 어때요? 재밌고 매력적이지 않나요?" 여중생부터 노부부까지 모인 문학 콘서트에선 시의 역할과 감상법, 시인의 삶 등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작년 세월호 사고와 올 상반기 메르스 확산으로 사회에 '죽음의 언어'와 '병든 언어'가 퍼져 있어요. 이렇게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문학과 시를 나누다 보면 '희망의 언어' '아름다운 언어'가 확산되지 않을까 해요."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 소외 지역과 메르스 피해 지역 주민을 위해 마련했다. 메르스로 마을 전체가 격리됐던 전북 순창에서 지난달 14일 연 음악회를 시작으로 문학, 무용, 콘서트 등이 오는 11일까지 전남 곡성, 경기 용인 등에서 열린다. 문정희 시인이 문학계 인사로는 처음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