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07 18:55

[시니어 에세이] 경로석

세상사에는 늘 음과 양이 있다.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거나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음이다. 양화를 구축하려다 음화가 세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런 일 중의 하나가 노약자석이 아닐까 싶다. 전철을 비롯하여 버스 등의 대중교통 시설에 대체로 노약자석이 지정돼 있다. 노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노약자석은 전철은 한 칸에서 양쪽으로 12석이 배치되어 있다. 근래엔 임신부를 위한 핑크 카펫이 새겨진 배려 석도 등장했다. 나이가 많은 분이나 장애인, 임신부 등을 고려하면 좌석의 비율이 맞는 것일까도 싶다. 그것은 예외로 치더라도 노약자석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노약자석’이라는 별도의 정해진 구역이 만들어짐으로써 그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부류는 당연히 노약자는 노약자석을 이용해야 하고 다른 구역에 서 있어도 그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지 않을까?

자기가 서 있던 앞좌석이 비게 되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앉기 마련이다. 바로 옆에 노인이나 임신부가 서 있어도 말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노약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새로운 벽이 생긴 꼴이다. 노약자석이 아닌 곳에 앉아있는 노약자는 당신 앞에 다른 노약자가 타면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좌우로 아주 젊은 사람이 앉아 있어도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대체로 나이가 든 사람이다. 일종의 노노케어다.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일면이다. 노약자석을 만들어 둠으로써 그 유용성도 있는 것은 사실이나 차별화를 통하여 진정으로 가야 할 인성을 다르게 유도하고 있지나 않은 지 고민해보기도 한다. 임신부를 위한 특별석에 임신부가 앉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없고 건장한 남성이나 젊은 아가씨가 배가 불룩 나온 임신부를 그려놓은 좌석 앞에 앉아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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