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10 10:08

난감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투다다’ 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가르더니 이내 나의 코끝을 흔들었다. 얼마 전 여든 넘은 집안 어르신과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방귀를 뀌신 거였다. 슬그머니 나온 거면 당연한 생리현상인 만큼 모른 척하면 그만이었다. 한데 단발도 아닌 연발의 분명한 소리에 냄새까지 만만찮게 머물고 있는 데다 짐짓 떠넘길 다른 사람마저 없으니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하지 말아야 할 것도 같았다.

이렇게 ‘거시기’할 때 민망함을 웃음꽃으로 바꾸는 유머 능력이 풍부하면 좀 좋을까. “‘인생 면허증’ 꺼내셨네요. 팔순이시면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면허증은 따 놓은 당상인거래요. 저도 맘 놓고 시원하게 해보게 면허증 발급 나이가 앞당겨지면 좋겠어요.” 내 딴에는 순발력을 발휘한답시고 어디선가 들었던 유머를 미소에 버무려 주워섬겼다. 점잖은 그 어르신은 뜻밖에도 나의 어줍살스러움을 한마디로 날리고 함께 웃을 수 있게 하셨다. “방귀 뀐다 뽕나무!”

[시니어 에세이] 나는 어떤 향기로 기억될까
웃어넘기긴 했어도 실은 아주 독특하고 강한 냄새여서 지금도 기억될 정도다. 암 수술 후 드시는 약과 음식 때문이지 싶다. 하지만 앞으로 건강만 유지되신다면야 더 독한 방귀인들 미소 짓지 못할 게 무어겠는가. 냄새는 잠시 후면 사라지고 마니 참지 못할 게 무어겠는가. 한데 좋든 나쁘든 간에 냄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영원히 지속된다고 한다. 눈으로 본 것은 3개월 후면 30%만 기억에 남지만, 냄새는 1년이 가도 100% 기억된다니 놀랍다.


스마트폰으로 냄새 전송

인간의 감각에서 이렇게 중요한 후각이 최대한 활용되지 않을 리 없다. 마케팅에서는 판매촉진이나 광고에 동원된 지 이미 오래다. 빵집과 카페에서 빵 굽는 냄새와 커피 끓이는 냄새는 지갑을 절로 열게 하지 않던가. 따뜻한 느낌의 계피 향이나 바닐라향이 감도는 매장에서는 뭔가 더 사야 할 것만 같아진다. 페퍼민트 향처럼 차가운 향보다 따뜻한 향은 유명 브랜드에 끌리게 하고, 계획보다 소비자가 더 많은 돈을 쓰게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아예 상품 자체가 후각을 건드리게 하는 새로운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향기 소나타’를 연주하는 최초의 향기 피아노가 발명됐는가 하면, 두드려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아이패드용 어린이 고전 디지털 북이 조만간 선보일 거란 소식이다. 냄새를 접목한 게임이나 영화 같은 오락물도 그간 냄새가 뒤섞이는 바람에 거듭됐던 실패를 딛고 곧 나올 듯하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내듯이 냄새를 보낼 수 있는 날도 머지않으리란 전망이다. 

최근에는 기억하고 싶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냄새를 부여해 저장할 수 있는 냄새 기억 키트도 개발됐다고 한다. 냄새 스냅사진을 찍게 되는 셈이다. 먼저 결혼식이나 자녀 탄생, 여행 등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정하고, 현재 나와 있는 1,000가지 냄새 앰풀 가운데 하나를 열어 냄새를 맡는다. 냄새 기억 키트에서 실제 냄새와는 다른 냄새 코드를 정하는 것이다. 나중에 온라인으로 그 코드를 주문해 다시 맡으면 고스란히 그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전쟁의 참혹한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데도 냄새가 활용되고 있다. 독일 드레스덴의 군사역사박물관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냄새를 상설 전시 중이라고 한다. 그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거의 사망해서 역사책에 의존해 만들어졌다는데, 어떤 냄새일까? 죽은 말과 최루가스, 시체와 땅의 냄새가 뒤섞인 지극히 혐오스러운 냄새란다. 그 냄새를 맡고 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게 된다고 한다.


향기로운 몸과 마음

그런가 하면 발효학자 고이즈미 다케오 씨의 저서 ‘맛없어?’의 서평을 보니 악취로 명성을 떨치는 음식도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악취 음식으로 스웨덴의 청어 통조림 수르스트뢰밍을 꼽았다. 은행알을 밟아 짓뭉갠 냄새에다 말린 고등어 즙과 똥냄새와 강렬한 생선 젓갈 냄새를 뒤섞은 듯한 냄새가 난단다. 2위에는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의 한국 홍어가 올랐다. 이런 음식은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단 맛을 들이면 중독되는 애호가도 있다는 것이다.

꽃이라고 다 향기로운 건 아니어서 악취를 풍기는 시체꽃도 있다. 해충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고, 가루받이에 필요한 곤충은 화려한 꽃 색깔로 유인한단다. 악취가 되레 음식 마니아를 만들고, 전쟁의 역사를 각인시키며, 꽃의 생존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누구나 향기롭기를 바라지 않는가. 세계 향료와 향수 시장의 규모가 300억 달러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 늙어가며 다가가기 싫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향기로운 몸과 마음을 갖추는 게 중요해진다.

방귀의 ‘인생 면허증’도 꺼낼 일 없이 ‘장롱 면허증’으로만 묵혀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쩌다 발생하는 생리현상이 문제가 아니다. 노인이 되면 신진대사가 떨어지면서 밖으로 노폐물을 배출하지 못해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게 된다니 말이다. 적절한 운동에다 샤워와 칫솔질, 속옷 갈아입기, 이왕이면 살짝 향수 곁들이기까지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또한, 마음의 향기는 결국 나를 내려놓고 베푸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가 보다. 과연 나는 어떤 향기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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