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너무 비장해서 힘겹네

질량과 힘, 속도가 옹골찼다. 길이 3.8m, 무게 400㎏의 호랑이가 극장으로 달려나올 것 같았다. 크르렁거리기만 해도 서늘한 기운이 차올랐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대호(大虎)'는 컴퓨터그래픽(CG)에 대한 근심을 지웠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는 후반 작업 전까진 '있지만 없는 존재'였다. 호랑이의 리액션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배우 최민식은 오죽했을까. 국내 기술진이 완성한 호랑이 CG는 꽤 만족스럽다. 호랑이의 동작과 습성, 안광(眼光)은 물론 근육의 떨림과 털의 움직임까지 살아 있다.

1925년 지리산, 명포수 천만덕(최민식)은 아들 석이(성유빈)와 약초를 캐며 살고 있다. 석이는 사냥을 접은 아버지가 답답하다. 전리품으로 대호 가죽을 챙기고 싶어 하는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포수 구경(정만식)·칠구(김상호)를 앞세워 군사작전 벌이듯 대호 사냥을 시작한다. 천만덕도 10년 만에 다시 총을 든다.

이 영화에서 대호와 천만덕은 짝패다. 시대와의 불화, 자식과의 관계 등이 닮아 있다. 둘은 점점 고립된다. 사냥꾼들은 천만덕을 제외하곤 먹고살 만큼만 잡는 살생의 룰을 지키지 않는다. 산군(山君)이라 불리던 조선 호랑이는 그렇게 사라졌다.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은 지리산을 무대로 액션과 드라마가 소용돌이치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100년 전 원경(遠景)이라면 근경(近景)은 오늘의 경쟁 사회다. '대호'는 둘을 겹쳐 보여주면서 우리가 짓고 있는 업(業),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명량'의 바다를 떠나 산으로 온 최민식은 무당처럼 관객을 끌고 간다. 비극의 폭과 깊이를 견뎌낸다. 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면 좀 피로해진다. 다른 감정을 봉쇄하는 직선적인 인물이 대다수인 데다 긴장과 이완의 리듬감이 부족해서다. 성유빈이 천진난만한 희극성으로 긴장을 덜어주지 않았다면 영화는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대호'는 후반부의 거대한 액션과 비장미가 두드러졌지만 관객을 밑동까지 흔들지는 못했다. CG가 도깨비 방망이가 될 순 없다. 큰 숙제를 풀었지만 호랑이로의 감정 이입은 힘겨웠다. 139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