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를 거쳐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를 간다고? 거기가 어딘데? 누군가 이곳에 간다니 이렇게 되묻는다. 사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런 나라도 있었나 싶다. 기억나는 거야 고작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아니면 한 때 열풍이 불었던 ‘몬테소리교육’의 몬테만 떠오를 뿐이다. 내가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다고 자부했는데 이 지구 상에 몬테네그로라는 나라가 존재한다고 하니 궁금증이 일어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 최근 2016년 최고의 여행지 순위를 발표했다. 국가별, 도시별, 지역별로 10곳씩 선정된 여행지 가운데 2016년 반드시 찾아야 할 나라로는 아프리카의 ‘보츠나와’를 도시로는 발칸반도의 남서부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를 꼽았다. 사진기자들이 너도나도 여기를 꼽은 이유는 유럽 전역을 통틀어 가장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 했다. 그런 곳을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불안했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버스는 아드리아 해를 끼고 몬테네그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우기에다 춥기까지 한 계절이라는데 날씨는 따뜻했고 햇살은 잔잔한 바다 위에서 반짝이었다. 몬테네그로에 가까워질수록 가을 단풍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 우리의 입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몬테네그로는 학교 다니던 시절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을 구성하는 연방이었다가 1992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세르비아와 신유고연방을 결성했다가 다시 2006년 독립한 신생국가였다. ‘몬테’는 산이고 ‘네그로’는 검은색 그러니까 국가 이름이 ‘검은 산’인 셈이다.
아드리아 해를 끼고 달리는 곳곳에 단풍이 고왔다. 하긴 단풍이라고 해야 화려한 색감에 익숙한 우리 눈엔 어색했다. 서양 사람들의 옷 색깔을 보면 한 톤 가라앉은 색이다. 빨강이라도 한 톤 가라앉은 빨강이요, 초록색이다. 바로 그 색이다. 노란색도 우리가 생각하는 노랑이 아니고 회색빛이 어린 노란색이고 주홍색도 회색빛 어린 주황색이다.
우린 막연히 그들이 선택하는 색감들을 소위 세련미를 풍긴다고 했는데 결국 그들의 산하의 자연색이었을 뿐이다. 특이한 것은 단풍색 중에는 빨갛게 물들어 가는 단풍나무나 감나무 잎에 물드는 주홍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빨간색 옷을 잘 입지 않는 모양이다.
차 한 대도 비켜가기 어려운 비포장 산길을 버스는 쿨렁거리다 좌우로 흔들리기를 반복하며 달린다. 한쪽에는 아드리아 해 해변을 끼고 달리고 한쪽에는 회색빛 높은 산을 끼고 달린다. 강원도 어느 험한 바닷가 해변도로를 달리듯 그렇게 달려 허름하기 짝이 없는 국경 검문소(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
국경 검문소라고 해 봐야 간단히 여권 검사만 하고 통과되었다. 여행이 한두 번도 아니어서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도 매번 이런 광경이 익숙하지 않다.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으로는 가시철망과 지뢰로 뒤덮인 우리의 국경이 더 익숙한 탓이다. 언제쯤 우리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북으로 갈 수 있을는지 우리나라 현실에 비교하니 부러움만 가득 안고 버스는 몬테네그에 들어섰다.
알바니아를 떠난 지 4시간 만에야 2016년 최고의 여행지로 선정된 몬테네그로의 코토르에 도착했다. 어디서 바라보아도 혼을 쏙 빼놓을 것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성곽 도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몬테네그로라는 나라 명보다도 더 유명해진 코토르. 끝없이 이어진 검은 산맥들과 험하고 높은 산봉우리가 사람을 압도한다. 듣자하니 007 영화의 촬영지였다고도 한다.
높고 험한 산으로 둘러싸인 깊숙한 천혜의 요새에 세워진 숨겨진 아름다움의 비밀 속으로 한 걸음 한걸음 들어선다. 돌로 쌓은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턱에 교회 하나가 우뚝 서 있다. 1518년에 세운 ‘건강의 여신 교회’를 바라보며 코토르 관광의 시작점 서문으로 들어선다. 성벽 오른쪽에 날개 달린 사자상이 멀리서 온 여행객을 반긴다. 날개 달린 사자상은 베네치아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곳이 베네치아 점령지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성문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시계탑이 보이는데 이 시계탑 앞에는 그 시절 죄인들을 세워놓고 오가는 이들에게 얼굴을 알렸다는데 모두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진을 찍느라 요란 법석을 떠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란다. 나도 그 사람 틈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코토르는 구시가지 그대로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고 있다. 장사도 하고 머물기도 하고 우리처럼 고대의 성이라고 비워놓고 관광객을 끌어들이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도 무언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계탑을 지나 성트리본 성당으로 들어갔다. 중앙제단에 4개의 붉은 기둥을 바탕으로 성채 모양이 있고 그 위에 왕관을 쓴 천사 상이 놓여있다. 809년에 세워졌다는 중세의 성당이 다 그러하듯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유리창과 성당의 평면도가 있었고 Andrea Saracenis 주교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그 당시 교회의 지하에는 무덤들이 있는데 특이하게 이 교회는 주교님의 석관이 보이는 곳에 놓여 있다.
성안의 미로 같은 길을 걸어 빠져나오자 아드리안 깊숙이 들어앉은 마을이 보인다. 주홍빛 지붕과 하얀 벽이 바다의 푸른빛과 묘하게 어울려 평화롭기 그지없다. 관광객의 산책을 위해 나중에 만들었다는 해안 성벽을 따라 걷는다. 잔잔한 바다에 떠 있는 요트들이 인상 깊다. 문득 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 꿈을 꾼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내는 것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