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나도 저 사람들 속에 끼여 살 수 없나… 가능성 없는 소망인가"

마산(馬山)의 경남대 정문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첫째 건물. 비상구처럼 보이는 철제 쪽문을 열고 13개 계단을 올라가면 옥상에 3개의 방이 있다. 그중 별채에 지현곤(54)씨는 엎드려 있었다. 척추결핵으로 뼈와 살이 말라붙어 작대기처럼 된 하체에 담요를 덮은 채로.

8년 전 풍경 그대로였다. 당시에도 이 방을 찾아가 '40년간 방 안에만 지낸 카투니스트 지현곤씨'라는 글을 썼다. 마지막 외출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고, 그 뒤로 2×3m 방 안에서 엎드려 카툰을 그려온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 인터뷰 기사는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세월이 흘러 문득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왔다.

'잊힌 기억 속의 성함이군요. 남들 보기에는 나아져야 함이 분명한데 여전히 이 자리에서 맴돌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변화야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의 변화는 가득하군요. 이제는 몇 가지 계기로 자유로움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좁은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불가능이라는 단어에 스스로의 감옥을 만들었는데…. 최근 세상의 넓음을 보았습니다.'

답장을 받고서 나는 마산으로 내려왔다. 그에게도 세월이 지나간 게 틀림없었다. 눈빛은 쇠잔했고, 얼굴은 살이 빠져 좀 길어보였다.

"그 뒤로 변화가 좀 있었으면 떳떳할 텐데, 보시다시피 저는 좁은 방에 그대로 있어요. 세상에 알려졌지만 별 수 없이 제자리는 여기뿐인걸요. 다만 변화가 있다면 세상 구경을 한두 달에 한 번씩 하게 됐다는 겁니다."

―세상 구경이라면?

"2013년 마산 장애인봉사단체 사람이 찾아와 '바깥출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권했어요. 저는 서울에서 열었던 제 작품 전시회에는 물론이고, 뉴욕 전시회에도 안 갔어요. 자존심 때문이었지요. 외출을 했다가 제가 무슨 꼴을 보여줄지 알 수 없으니까요. 신장(腎臟) 기능이 전혀 작동 못 하니까 대소변 문제가 통제 안 됩니다. 하지만 봉사단체 사람이 '그래도 한번 해보자. 차를 타고 나가 바람이라도 한번 쐬자'고 강권해, 마침내 외출하게 된 거죠. 첫 외출은 6월 29일이었네요."

그는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줬다. 외출할 때마다 차 안에서 자신이 카메라로 찍은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첫 바깥 외출은 어떠했나요? 햇수로는 45년 만이었겠군요.

"마산을 한 바퀴 빙 돌았던 것 같아요. 마창(馬昌)대교도 건너가 보고. 해변에서는 휠체어에 태워 잠깐 내려줬는데 발밑에 바싹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 그건 파도가 밀려와 자갈을 때리는 소리였어요. 이게 파도 소리구나. 그동안 좁은 방에서 지내왔으니 몰랐구나. 온갖 회한이 들었어요. 이런 세상이 있는데 여태까지 뭐 하면서 살았나 하는 생각도요. 정말 말로는 표현이 안 되네요."

―남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풍경인데요.

"사람, 자동차, 건물, 간판, 푸른 바다는 물론이고 심지어 쓰레기 더미도 제게는 다 신기한데, 그동안 왜 좁은 방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이 없었는가. 나도 저 사람들 속에 끼여서 살 수 없는가, 그건 가능할 수 없는 소망인가, 한마디로 자유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어요. 제 욕심이 늘어난 거죠."

―첫 외출 때 지현곤씨가 걱정한 대소변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나요?

"서너 시간쯤 걸렸을 겁니다. 이를 위해 일주일 전부터 음식을 절제했어요. 출발 당일에는 아예 안 먹었어요."

―원래 식사량이 많지 않은 걸로 아는데.

"아침저녁 두 끼를 먹는데, 제가 못 움직이니까 장(腸) 기능이 퇴화해 소화가 안 돼요. 단백질은 거의 분해를 못 하네요. 그렇게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힘들어서 이틀간 끙끙 앓아요."

―그래도 다음 외출이 기다려지지요?

"약속 날짜가 잡히면 소풍을 기다리는 열 살짜리 아이처럼 되네요. 지난 10월 초 외출하기로 한 날에 몸에 문제가 생겨 못 갔어요. 이번 달에는 못 가는구나 너무 섭섭했는데, 몇 주 뒤에 그분들이 '이제 몸이 괜찮아졌으면 가실래요?'하고 다시 연락을 줬어요.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한때 그의 취미는 창문을 통해 달을 보고 달 사진을 찍으며 공상을 하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달은 안 보느냐?"고 묻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달도 쳐다봐야겠지만 발밑도 봐야지요. 요즘 제 일과는 구글 지도와 외출 사진들을 보고 또 보는 거죠. 이러니 '늦바람'이 무섭다고들 하잖아요."

―그게 늦바람인가요?

"몰랐다가 이 나이에 알겠됐으니 늦바람이 난 거죠. 선생도 불쑥 찾아온 게 혹시 늦바람이 나 그런 게 아닌가요?"

―글쎄요. 그런데 외출해서 본 가장 멋진 풍경은요?

"마창대교에서 시내를 내려다볼 때였어요. 정말 시원했어요. 제 방의 창문 쪽으로는 새로 들어선 건물들이 막고 있으니까요. 저는 외출하면서 싫어하는 장소도 한 곳 생겼네요."

―싫어하는 장소라?

"(그는 인터넷으로 구글 지도를 확대한 뒤) 여기 집으로 돌아오는 갈림길이에요. 꼭 이쪽을 거쳐 돌아오더군요. 여기만 오면 집으로 다 왔다는 걸 알게 돼요. 나는 싫은데…. 마음속으로 끌려가는 심정이지요."

8년 전 그의 방에는 낡은 12인치 TV가 있었고, 노트북은 없었다. 이제 TV는 없어지고 대신 머리맡에 노트북이 놓였다. 모니터를 연결해 사용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은 쉬워졌지요?

"처음에는 인터넷 카페에서 좀 활동했어요. 제가 매스컴에 나왔으니까 회원들이 관심을 가졌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들 자기 일에 바빠 소홀해지더군요. 그래도 인터넷은 내게는 유용한 도구이네요. 필요한 물건을 사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하기 어려웠는데,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게 됐거든요. 제게는 택배 기사만큼 고마운 사람이 없어요."

―실제 외부 사람과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어요. 한두 달에 한 번 외출할 때면 그동안 못 해서인지 말이 많아져요. 말 많으면 약장수이고 더 많으면 사기꾼이라는데."

―펜과 연필들이 담긴 통이나 잉크가 안 보이는데, 카툰은 안 그리는가요?

"이제는 컴퓨터 그림판에 마우스로 그리긴 하지만 왼쪽 시력이 안 좋아 초점을 맞추지 못해요. 원래 한 달에 겨우 두 장쯤 그렸는데 그것도 쉽지 않네요."

―작품을 팔아 제법 돈을 모았나요?

"당초 용돈 벌이로 카툰을 그렸지만 세상에 알려지면서 욕심이 생겼네요. 자원봉사자들이 외출시켜줄 때 저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제가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집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말 타니까 견마 잡히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현실에서 냉정하게 보니 그게 아니네요."

―지금 생활비는?

"현재 건물은 어머니 명의로 돼있어요. 하지만 저는 기초수급생활자에다 1급장애인이어서 70만원쯤 정부 지원을 받게 됐어요. 건넌방에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가 계세요. 늙도록 자식이 곁에 붙어 있으니, 이런 저를 '캥거루족'이라고 하대요."

―그런 비유는 지현곤씨에게는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외출을 경험한 뒤로 좁은 방에 굳이 이렇게 있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당이 있는 집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원룸, 소형 아파트에만 살아도 전동 휠체어를 타고 제 스스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될 텐데 말이죠."

―모친에게 이사 문제를 상의해보지 않았습니까?

"어머니는 이 건물을 떠나 새로운 곳에 산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1층 가게의 세(貰)로 살아가니까요. 우리 형제들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어요. 저를 위해 무엇을 해달라고 말하기에는… 요구할 처지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좁은 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식의 변화가 생겼는데, 가족은 제가 늘 여기에 못 박혀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제 마음이 욕심스러워진 걸까요."

―혼자 방을 얻어 독립하는 것은요?

"여러 생각이 맴돌이합니다. 올봄에 봉사단체 사람들이 저를 유채꽃 축제장으로 태워갔어요. 임시 장터가 열렸고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속에서 저와 비슷한 상태의 사내가 노래를 튼 채 기어다니며 구걸했어요.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지만 제가 동병상련으로 지폐 한 장을 내밀었지요.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제가 이 사내보다 정신적으로 못하다는 것을."

―정신적으로 못하다니?

"구걸할 수 있는 용기만 있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온갖 말을 늘어놓아도 구걸을 청할 용기까지는 못 갖췄어요."

―본인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런 질문에 막막하고, 답이 없네요. 사람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때문에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고…."

―실제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별로 바뀌지 않는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지요.

"그건 일상을 덤덤하게 누리는 분과의 차이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외출만 생각하면 소풍을 가는 아이 마음이 되니까요. 비록 다른 분의 도움을 받지만 한두 달에 한번 외출하게 됐으니 그전과는 달라진 거죠. 어쨌든 세상을 보는 제 시각이 바뀌었어요."

―시각이 바뀌었는다는 것은?

"그전에는 좁은 방 안에서 지내온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이 방이 너무 좁게 느껴져요. 방은 그대로인데. 봉사단체에서 세상 구경을 시켜주니까, 늦은 도둑질을 배우게 되니까 몇 년 전부터 더 견디기가 어려워졌어요. 내게 남은 시간은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없을까, 밤낮으로 이런 생각을 해요. 몸 상태가 점점 더 힘들어지면서 마음은 성급해졌어요. 현실적으로는 뚜렷한 방도가 없어요. 그래서 마음이 괴롭네요."

―알고 나니까 괴로운 것인데, 차라리 모르고 살았던 게 좋았을까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질문이군요. 이 질문을 계속 반추해왔어요. 제가 외출을 안 했다면 그래서 바깥세상을 몰랐다면 이런 고민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결국 제 답은 괴롭더라도 아는 게 낫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런 세상을 모르고 넘어갔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