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절반, 현금성 자산 비율 감소

국내 상장회사의 절반 정도가 올해 들어 현금성 자산 비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성 자산은 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금성 자산 비율이 감소한 기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상장사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약해졌다는 의미다.

◇현금성 자산 줄어든 기업, 실적도 부진

1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1316개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과 비교해 올해 3분기 말 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이 감소한 회사가 595개로 나타났다. 상장사의 45.2%가 현금성 자산 비율이 감소한 것이다. 현금성 자산은 대차대조표상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 금융상품'을 합친 것으로 현금성 자산이 많을수록 기업이 재무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금성 자산 비율이 많이 감소한 기업들은 대체로 올해 실적이 부진했다. 현금성 자산 비율 감소 폭이 큰 10개 기업 중 5개 기업이 올해 1~3분기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YG플러스는 현금성 자산 비율이 지난해 말 85.4%에서 올해 3분기 말에는 9.9%로 감소했다. YG플러스는 올 들어 3분기까지 44억원의 누적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신규 사업에서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손실이 커졌다. YG플러스의 모기업인 YG엔터테인먼트도 현금성 자산 비율이 28.9%포인트 줄었다. 로켓모바일·보타바이오·파티게임즈·룽투코리아도 현금성 자산 비율이 많이 줄었는데, 모두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현금성 자산 비율이 많이 감소한 기업 중에 적자를 내지 않았더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냈거나 자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현금성 자산 비율이 많이 증가한 기업 중에는 소프트웨어나 화장품 등 내수 기업이 눈에 띈다. 모바일 게임업체 컴투스는 현금성 자산 비율이 4.8%에서 37.6%로 증가했고, 화장품 업체인 토니모리는 18.8%에서 44.8%로 늘었다.

◇자금 조달 어려워움에 현금 가치 커져

증권업계에서 기업의 현금성 자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직접 금융 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이 하반기 들어 급랭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지만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투자자가 한 곳도 없었다. 신용등급이 AA-인 SK하이닉스도 지난달 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700억원 정도가 매각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투자자들이 회사채 시장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기관 투자자들의 회사채 시장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회사채 수요예측 참여율은 올해 4월에만 해도 234.1%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10월에는 123%로 뚝 떨어졌다. 수요예측은 공모 가격을 결정하기 전에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해서 진행하는 일종의 예비평가다. A등급과 BBB등급 이하 회사채 수요예측 참여율은 각각 60.9%, 2.4%로 더 부진했다.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의 대안으로 은행 대출을 늘리고 있지만, 내년에는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증시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수록 현금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의 실적이 악화하고 부채가 늘어나면서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고 있어 기업이 보유한 현금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은 기업 중에서도 최근 실적 전망치가 좋아지고 있는 기업의 투자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